"21세기는 문화예술이 발전하지 못하면 국제 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는 문화와 감성의 시대입니다. 그 문화예술 경쟁의 최전선에 교향악단이 있고 교향악단의 수준은 그 도시와 나라의 경제,문화,예술 수준을 반영하는 대표적 얼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는 경북도립교향악단의 신현길 신임 상임지휘자는 "진정한 클래식의 대중화는 고급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를 넓혀가는 것"이라며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의 공연이야말로 대중화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10년만에 바뀐 상임지휘자의 이같은 철학은 올해 1월 부임하지마자 도립교향악단의 분위기를 확 바꿔 놓았다. "처음 와서 한 말씀이 내일부터 브람스 심포니 전곡(1~4번)을 연습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당황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누구의 무슨 곡, 몇 번, 몇 악장을 연습하겠다는 식이었거든요. 그만큼 준비하기도 쉬웠죠. 그런데 브람스 전곡을 준비하라니···."
단원들은 신임 지휘자의 직설적이고 대담한 접근(?) 탓에 연습량이 크게 늘었다고 한마디씩 덧붙였다. 그리고 비록 한달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지휘자의 의욕을 따라가기 위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연습 내용도 고전에서 말러 심포니,스트라빈스키 등 현대곡으로 스펙트럼이 크게 확장됐다.
"경북에 온 첫 느낌은 사람들이 밝고 호의적이며 강하고 세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소리가 커서 그런지 대단히 진취적으로 보였습니다.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이고,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견인했다는 긍지도 대단하더라구요. 그런데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우리나라를 이끌고 세계 정상으로 서야 겠다는 의지를 왜 갖지 않는지···, 경북이 문화예술분야에서 최고 수준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립교향악단이 앞장서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신현길 상임지휘자는 문화격차와 문화소외 문제에 대해서도 남다른 관심을 나타냈다. "경북에는 23개 시·군이 있습니다. 도립교향악단이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도민 대부분은 한 해에 1~2번 정도 클래식 음악을 직접 만날 기회를 가질 뿐입니다. 정말 제대로 된 수준 높은 공연으로 이런 소중한 기회를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기성세대가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이 적다고 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까지 무관심한 것은 아닙니다. 산간벽지에도 베토벤과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들으며 감동의 눈물을 흐릴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진 청소년들이 있습니다."라며 "왜, 이들이 단지 대도시가 아닌 곳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아야 합니까."라고 반문했다.
신 지휘자는 중소도시일수록 공무원들과 지방 정치인들이 문화분야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만,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겪을 문화소외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공직사회와 지방 정치인의 문화적 무지를 참다못한 신 지휘자는 군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시절, 직접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던 탓에 아깝게 낙선함으로써 지방 문화혁명을 주도하겠다는 포부(?)는 좌초됐지만, 경북지역 공무원들과 정치권은 문화에 대한 인식이 남달랐으면 하는 바람은 여전하다.
"대구·경북에는 대구시향과 경북도향 2개의 교향악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구시향은 대구에서만, 경북도향은 경북에서만 공연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시·도민의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모르겠습니다. 대구시향과 경북도향이 교환연주를 하거나 협연을 한다면 시·도민은 2개의 교향악단을 갖는 효과를 얻을 수 있고, 서로 선의의 경쟁을 통해 더 발전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신 지휘자는 "대구·경북 지역의 제한된 문화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지역사회를 홍보하고 대외적 이미지를 더 높일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신현길은 서울대 음대와 러시아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오페라 심포니 최고 지휘자 과정을 졸업하고, 서울대·이화여대 강사 및 국립교향악단·KBS교향악단 단원을 거쳐 KBS교향악단·부천시립교향악단·울산시립교향악단·목포시립교향악단 등의 객원지휘, 러시아 국립옴스크 교향악단 수석객원지휘자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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