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당연한 것에 대한 회의

기자의 중·고교시절엔 대구에서 남녀공학인 학교가 경북대 사대부설중·고밖에 없었다. 오가며 그 학교생들을 볼 때마다 부러움 반 쑥스러움 반의 느낌을 가졌던 것이 기억난다. 여학생과 같이 공부한다면 창피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훨씬 열심히 할 듯한 생각도 들고, 異性(이성)에 대한 괜한 호기심을 들킬 것 같은 감정이 교차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남녀공학이 아닌 학교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중·고의 남녀공학은 대세가 됐다. 1998년 교육부가 남녀공학의 장점만을 내세워 신설학교는 무조건 공학으로 만드는 등 반강제적으로 이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온 탓이다.

일률적으로 전환된 것이 아니어서 약간의 세월 차는 있지만 정부주도의 남녀공학 정책이 시작된 지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그래서 본지 교육팀과 상의해 이 문제를 짚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식상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즉 이미 남녀공학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분석을 곁들여 언급을 했고, 교육에 대해 웬만한 관심만 있으면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 못잖은 卓見(탁견)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특히 해당 학부모들에게는 절체절명의 문제여서 '어느 학교는 전교 10등안에 남학생이 한 명도 없다더라.' 혹은 '공학에 가면 남학생들의 내신성적이 불리해 대학진학에 손해를 본다더라.'라는 이야기가 巷間(항간)에 많이 떠돌고 있는 것도 부담이 됐다.

그래도 취재를 시작한 것은 남녀공학정책이 올해로 10년째를 맞았으니 교육현장을 중심으로 한 번 점검이나 해보자는 다소 가벼운 의도였다. 그리고 2008학년도부터 내신중심의 입시제도가 시작돼 올해 고 3이 되는 입시생들은 물론, 중·고생 전부가 내신공포에 휩싸여 있다는 점도 좋은 이유가 됐다.

막상 취재에 들어가니 놀라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선 남녀공학의 경우, 남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인데 뭣 때문에 再論(재론)하느냐는 분위기여서 놀랐다. 분명히 문제점이 드러나는데도 이것을 모두 다 '어쩔 수 없는 당연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또 다른 놀라움은 의외로 이 문제가 물밑에서만 시끄러웠을 뿐 한 번도 公論化(공론화)된 적이 없고, 이와 관련해 최소한의 전수조사조차 이뤄진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교사나 학부모, 교육당국, 전문가 모두 당연하게만 생각했을 뿐 그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론에서도 지난 10년 동안 편의시설 부족이나 외형적인 변화만을 다룬 皮相的(피상적)인 기사만 있었을 뿐 문제점을 세밀하게 분석한 예는 찾기가 힘들었다.

특히 가장 관심이 많은 成績(성적) 문제로 들어가니 아예 자료가 없어, 취재를 하면서 대구의 20여 개 남녀공학 학교에 부탁해 하나하나 성적을 뽑아내고 대조, 분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알려진 그대로 대부분 학교에서 여학생들의 성적 상위권 점유율이 높게 나타났다.

기사가 나가자 갖가지 반응이 쏟아졌다. 교육부, 교육청, 학교 측과 일부 독자들은 예상대로 당연한 일에 대해 왜 뒤늦게 문제 제기를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일부 학교에서는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 내용이 다 맞지만 이제 와서 무슨 방법이 있느냐?'고 했다. 반면 학부모라고 밝힌 또 많은 독자들은 '심각한 문제지만 모두 당연하게 생각하고 문제점을 외면했다. 학생들의 심리적인 피해의식까지도 세심하게 취재해 보도해달라.'는 요청도 해왔다.

모두 알고 있는 '해묵은 이야기'를 다시 거론한 것은 이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또 정책 시행 10년이면, 앞으로도 계속될 정책이라면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한 번 점검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점은 더 발전시켜 나가고, 문제점이 있으면 어떻게 고쳐나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입시지옥에 빠져 있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어주자는 뜻이기도 하다. 굳이 데카르트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당연한 것에 대한 懷疑(회의)'가 그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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