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대사관 행사가 대구에서 많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자주 대구에 내려올 수도 있겠고요. 이번 행사를 대구에서 갖자고 여러 번 대사관 측을 설득했지요."
8일부터 9일까지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주한 미국 대사관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관의 '2007 주한 미 대사 초청 편협 간부세미나'의 사회를 본 주미 대사관 로버트 오그번(49) 대변인. 그는 대구가 그렇게 좋다고 했다. 우창제(禹昌濟)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는 그는 기자를 만나자 과거 대구 미문화원장 시절(1991~1993)의 추억부터 떠올렸다. 앞산 밑 한 식당에서 선짓국을 먹었던 경험, 골목길 식당 이야기 등등.
1959년 생후 10개월 만에 미국 가정에 입양된 뒤 양부모가 침대 머리맡에 "한국을 잊지 말라."며 걸어둔 태극기를 보며 자란 그는 다행히 별탈없이 대학졸업 후 외교관으로 변신, 한국근무를 자원했고 대구 문화원장으로 첫 부임, 대구와 인연을 맺었다. 그런 그가 이집트·베트남 등 근무 뒤 지난해 8월 주한 미 대사관 대변인으로 승진, 다시 돌아온 것.
이런 인연으로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열릴 계획이던 이번 행사가 북핵사태 등으로 연기됐다가 재추진되자 그는 대구서 행사를 갖자며 대사관 측을 설득, 결국 대구 유치에 성공했다고 뒷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구에서의 추억과 인연을 잊을 수 없다."고 한 그는 대구부임 뒤 매일신문(91년 4월 20일자 보도)을 통해 자신의 생모(生母)와 뿌리찾기 사연 및 성장과정이 알려졌고,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격려 이야기와 편지, 갖가지 사연들이 쇄도하는 등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됐다. 그러나 대구를 떠날 때까지 결국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고 아직도 어머니 찾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2002년 양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워싱턴 인근에 홀몸으로 사시는 양어머니께 매일 안부전화를 드리곤 할 정도로 어머니 사랑이 지극하다. 지난 93년엔 '두 분의 어머님께 이 책을 드린다.'라는 헌사를 담은 '어머니 나라에서 만난 시간들-로버트 오그번 에세이 혹은 우창제 이야기'란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베트남 출신의 아내와 아들(17)과 딸(7) 남매를 둔 그는 가족 사랑도 남다르다. 대구에 더 자주 오는 것이 소원인 그의 뜨거운 대구사랑은 9일 버시바우 대사와의 대구 약전골목 나들이로 더해졌다.
정인열기자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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