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일본군 위안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는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모여든다. 주름진 얼굴에 허리 굽은 70, 80대 할머니들. 세상이 말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다.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 할머니들의 수요 시위가 무려 16년째 이어지고 있다.

◇전쟁광 일본에 의해 찢기고 무너져 내린 삶.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 역사 왜곡 중단을 통한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대사관 측은 시종일관 묵묵부답이다. 대화는커녕 이들을 향해 창문 한 번 연 적도 없다. 일본의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관계자는 "한국서 데모하는 위안부 할머니는 북한공작원"이라고 망언을 늘어놓기도 했다.

◇심지어 국내서도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 같은 사람은 "수요 집회 참가 할머니들이 진짜 위안부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탤런트 이승연도 생각 없이 종군 위안부 컨셉의 누드 화보를 찍으려다 국민들로부터 호되게 지탄받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수요 시위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한 최장기간의 집회로서 세계의 반전운동가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고의 15년도 이제 끝나가려나. 미국 하원에서 오는 15일 미 의회 사상 최초로 종군 위안부 청문회가 열린다. 우리나라 할머니 2명과 함께 백인 피해자로는 처음으로 네덜란드의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가 증인으로 나선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살다 일본군에 끌려갔던 오헤른 할머니는 1992년 도쿄서 열린 국제전쟁범죄 청문회 때 TV를 통해 한국인 할머니들의 투쟁을 보며 용기를 얻어 일본의 만행 폭로와 사죄를 요구하는 대열에 앞장서고 있다.

◇일본계 3세 마이크 혼다 의원이 그간 수차례 제출한 종군 위안부 관련 결의안은 번번이 일본 측 로비에 막혀 무산됐다. 하지만 이번엔 희망적이다. 일본이 눈에 불을 켜고 저지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이 문제에 적극적인데다 亞太(아태) 소위의 애니 팔레오마배가 위원장도 가세, 어느 때보다 통과 가능성이 높다. 225명에 이르던 할머니 중 이미 105명이 세상을 떠났다. 더 늦기 전에 할머니들의 恨(한)을 풀어줄 희소식이 날아들기를 기원한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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