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웃음치료사'가 되고싶어요."
김현표(40·포항시 남구 효자동) 씨는 웃음치료사다. 세상에 각양각색의 직업이 많다지만 웃음치료사는 생소하다. 웃음으로 각종 질병을 치료한다는 거창한 직업인 셈이다.
그는 오는 3월 3일 포항 호미곶에서 임진각까지 523km를 걸어서 종단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요즘은 매일 30km씩 걷기연습을 하고 있다. 매일 25km씩 걷는다면 임진각까지는 21일이 걸린다. 비가 오는 등 날씨를 감안해도 24일 정도면 임진각에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 씨는 3주간의 국토종단 기간 동안 거쳐가는 마을마다 다니면서 웃는 즐거움을 전파하고 다닐 작정이다. "특별한 계획이 있기보다는 그냥 하루하루 거쳐가는 마을마다 들러서 사람들을 웃기고 웃음의 미학을 얘기하고 한번도 제대로 웃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웃겨주고 싶어요."
오늘도 그는 포항에서 경주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5시간 이상을 걸었다. 어느새 다다른 경주. 오릉(五陵)옆을 걷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햇살도 따사롭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해진 날씨는 걷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자원봉사자 김명옥(32) 씨와 꽃마을 경주한방병원의 이도형(41) 과장이 따라나섰다. 혼자 걷거나 여럿이 걸어도 걸을 때는 말을 하지않는다. 그냥 지나치는 차량들을 향해 웃어주기만 한다. 웃는 이유를 모르는 운전자들은 이상한 사람 쳐다보는 듯한 눈길을 가끔씩 던지기도 한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그가 불쑥 국토종단에 나선 이유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4천800만 전국민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걷기로 했지만 사실은 웃음치료라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다. 생활이 고달프더라도 하루에 한 번이라도 더 활짝 웃을 수 있다면 온 국민이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이기도 하다.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웃음치료다. 암과 우울증 등 중증환자들을 웃게 만드는 일이다. 경주의 한 병원. 거동이 불편한 중증환자들이 익숙하게 김 씨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둘러앉는다. 그는 "크게 한 번 소리 내서 웃어보자."며 웃음을 유도했고 이어 손을 벌려 온몸으로 웃음을 만든다. 몸과 마음이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마음껏 웃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남 나주에서 온 윤영한(76) 씨. 다른 사람의 부축 없이는 움직이기가 불편한 그지만 웃음치료 때는 빠지지 않는다. "처음 웃음치료 하는 걸 봤을 때는 별 미친 놈들 다봤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웃음치료 한다고 자리에 앉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병원에서의 웃음치료 외에 포항의 웃음센터에서 웃음강좌도 열고 있다. 그는 '3.3.3'캠페인을 시작했다. 하루에 세 번, 3초간, 그리고 3주 동안 서로 가볍게 포옹하면서 "사랑해."라고 속삭여줄 것을 권유한다. 아무리 오래된 부부라도 처음엔 서먹서먹하고 낯간지럽게 느껴지더라도 3주간만 계속한다면 신혼 초기의 감정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다고요? 3.3.3캠페인의 효과를 믿지못하겠다면 지금 당장 시도해 보세요."
김 씨가 살아온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해보지않은 직업이 없었다.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에는 부산에서 자랐다. 부산 해양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잠깐 다니다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곧바로 외항선을 탔고 배에서 내리자 포항에 정착했다. 보험회사에서부터 나이트클럽, 정비공장 등 온갖 직업을 전전하던 그가 마침내 레크리에이션 강사에까지 이르렀다. 강사를 하면서 그는 치료레크리에이션에 눈을 떴고 웃음치료에 빠졌다. 올해로 5년째.
국토종단을 계획한 그는 지난 1월 초부터 걷기연습을 시작했다. "매일 걸으니 이제 걷는 데는 무리가 없어요. 걸으면 다리는 무거워지지만 머리는 서서히 차가워집니다." "혼자 걸으니까 더 좋아요. 국도변을 지나치는 차들은 걷고 있는 나를 보고 그냥 지나칩니다. 왜 걷느냐고 묻거나 관심을 갖지도 않아요. 그럴 땐 지나치는 운전자를 향해 그냥 한 번 씩 웃어주면 그만입니다."
국토종단에 앞서 이달 말쯤 동해안을 따라 2박3일간의 짧은 도보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확실한 이유가 있기에 그는 오늘도 걷는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