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 농산물 '희망의 싹' 돋았다

경북도 민선 4기 첫 미주 시장 개척

지난 달 31일 미국 뉴욕의 대형유통업체인 H마트 본사 회의실. 경상북도가 미주로 파견한 해외시장개척단을 따라온 박희주(54·청도 이서면) 씨는 그동안 유럽에서의 시련과 설움이 갑자기 떠올랐다.

지난해에만 유럽시장에 팽이버섯과 새송이버섯 345t(120만 달러)을 수출한 그이지만 유럽인들의 입에 생소한 새송이버섯과 팽이버섯을 맛보이기 위해 봇짐을 매고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했던 눈물겨운 기억 때문이다.

"서양에는 양송이버섯과 표고버섯이 대부분입니다. 동양인이 들고온 이름도 모르는 버섯을 덥석 입에 넣을 유럽인은 없었어요."

그래서 1998년 버섯연구소를 세웠다. 자체품종 개발과 종균배양을 통해 최고 품질의 버섯을 생산해 질(質)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품질로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아무도 품질을 믿어주지 않자 어쩔 수 없이 해마다 40여t의 버섯을 맛보기용으로 무상으로 풀었다. 관심을 가진 외국 바이어가 나타나기까지 무려 2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런 박 씨가 뉴욕에서 뜬금없이 옛날 생각에 잠긴 것은 달라진 위상 때문이다. 열흘이라는 짧은 일정동안 그는 미국 현지 20곳의 매장을 거느린 글로벌기업 H마트 회장을 만나 버섯을 맛보였고, 캐나다한인실업인연합과 LA한인상공회의소와의 수출 약속까지 받았다. 경북도에서 유망기업 바이어들을 데리고 함께 미국으로 가 활로 개척부터 품질보증까지 해 준 것. 박 씨는 "경북도에서 정무부지사까지 나서 함께 발품을 팔아준 덕분입니다. 우리 같은 중소업체들이 우량 바이어들을 만나는 것은 사실 쉽잖은 일이지요."라고 고마워 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경북도 이철우 정무부지사를 단장으로 도내 8개 농수산물 가공업체 사장 등 19명의 해외시장개척단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민선 4기 출범 이후 처음 나서는 농산물 해외시장 개척 길.

농산품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이들은 여정도 살인적 스케줄로 짰다. 열흘 동안 뉴욕, LA 등 6곳의 도시를 방문하기 위해 8번의 비행기를 갈아탔다. 비행거리만 지구를 3분의 2바퀴 돌 정도의 2만9천568km. 여행 스케줄을 짠 국내 여행사 직원도 혀를 내둘렀다.

9·11 테러 이후 삼엄해진 미국 입국 절차도 겪어야 할 설움이었다. 한 도시에서 이틀도 머물지 않는데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도시를 가야 하는 시장개척단의 일정에 대해 공항보안요원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개척단들의 비행기 탑승권에는 매번 'SSSS'라는 '특별검색대상' 기호가 찍혔다.

'SSSS'가 찍힌 시장개척단은 검색 게이트를 통과하기 위해 신발과 혁대, 옷까지 벗어야 했고 일일이 가방 속 내용물들을 조사당해야 했다. 또 공중전화 부스 같은 데 들어가 3면에서 부는 정체 모를 '검색 바람'을 맞기도했다. 한마디로 잠재적 범인 취급이었다. 게다가 비행기 좌석도 언제나 옴짝달싹할 수 없는 가운데 자리에 배정됐다. 일행들이 함께 앉지 못하고, 앞뒤 일렬로 가운데 자리에 앉는 수모도 감수했다. 한번 찍힌 'SSSS'는 미국을 떠날 때까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그러나 피로와 굴욕은 수출계약 실적으로 보상됐다. 안동간고등어 60만 달러, 청도 감말랭이 70만 달러, 청도와인 50만 달러 등 농수산물 수출계약만 220만 달러에 달했다. 또 경기도 등 다른 지역으로의 투자를 계획했던 미국기업 두 곳은 시장개척단의 정성에 감복, 4천만 달러의 투자 진로를 경북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청도와인 하상오 대표는 "경북도가 나섰기 때문에 우리 제품의 공신력이 높아져 해외 바이어들과 수출계약을 맺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경북도의 후방지원은 우리 농수산물의 해외진출에 가속을 붙였다. 이번 시장개척단에 참가한 업체 대표들은 "제품의 질과 경쟁력은 지역 업체들이 담당하고 경북도가 이를 보증한다면 더 많은 수출계약을 따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올 한해 도청 통상외교·투자유치팀 공무원들의 비행기 탑승권에 'SSSS'가 얼마나 많이 찍히는가에 따라 '소득 3만 달러, 일자리 7만 개 창출'이라는 도정 목표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솟아오른 시장개척단 일정이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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