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시비비 코너)난항 겪는 의료법 개정

의료법 개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 지금의 의료법은 1951년에 제정된 뒤 1973년 전면 개정된 이래 34년 동안 부분적인 개정만 이뤄졌다. 이번에 추진되는 의료법 개정은 의료 환경 변화와 질 높은 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를 반영한다는 취지에서 지난해 8월부터 논의가 진행돼 왔다. 그런데 막상 정부가 개정안을 발표하려 하자 의료계가 의권 침해를 이유로 전면 반대한다며 집단행동까지 나서고 있다. 시민단체 쪽에서는 국민 편의와 의료 공공성에서 벗어난 개정이라며 다른 방향에서 반대하고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다소 어려워 보이는 내용이어서 의·약계열 지망생들이나 관심을 둘 문제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이번 대립에는 정부와 이익집단, 시민단체들의 각기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는 점에서 민주사회에서의 이익 충돌 문제, 법 개정 절차상의 문제, 의료의 공공성 확보 필요성에 대한 문제 등 다양한 토론거리들이 나올 수 있으므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 법 개정 절차상의 문제

이번 의료법 개정 작업은 지난해부터 5개월 동안 각계 대표들이 모여 논의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의협, 치협, 한의협 등 의료 6단체와 시민단체의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10차례에 걸쳐 개정 작업을 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을 주장했다. '금번 의료법 전면 개정작업은 헌 집을 부수고 새 집을 짓는 마음으로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설계자인 정부뿐 아니라 집주인 국민을 대표하는 시민단체와 집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단체의 대표를 포함해서 총 15명이 모여서 5개월 동안 함께 설계도 하고 공사를 한 것이다.'(정부 관계자 인터뷰)

참가한 의료 단체들은 여기에 대해 의견이 없지만 시민단체 쪽에서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절차적 문제를 이유로 개정안에 대한 반대 주장까지 내놓는다. '2006년 8월 의료법 개정 실무작업반이 만들어질 때 의료 6단체(의협, 병협, 치협, 한의협, 간협, 조산사협), 2명의 전문가(전 의협 법제이사들임)가 참가하고, 시민단체에서는 경실련과 녹소연 2단체만 구성되었다. 이에 경실련은 위원구성의 편향성을 강력하게 지적하며 위원 재구성 내지 동수로의 위원 추가를 주장하였다.(중략) 정부가 의료법을 수개월에 거쳐 논의했다고 하지만, 정작 폐쇄적인 방식으로 진행함으로써 각 부문 간의 의견수렴이 용이하지 않은 구조로 진행하다 사회적 공론화 과정 없이 결국 정부안으로 급작스럽게 발표일정을 추진함으로써 의료계에 반발의 명분을 제공한 꼴이 되었다.'(경실련 성명서)

▨ 의료계의 반발 이유

의사협회는 이미 휴진, 대규모 집회 등을 통한 집단행동을 구체화하고 있다. 개정안에 대한 의사협회의 불만은 몇 가지로 나눠진다. 먼저 의사의 고유 역할 침해 부분이다. 의사의 역할 규정에 '투약'을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과 간호사의 역할에 '간호진단'을 명시한 점은 의료체계를 뒤흔드는 악성 조항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스포츠마사지, 피부관리 등 유사의료행위를 양성화하는 조항도 포퓰리즘적이라고 비난한다.

의사협회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여론이 대다수다. '이런 조항들이 의사의 진료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면 의견조율 때는 왜 말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의협이 법 개정 철회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엄포는 환자들을 볼모로 한 집단 이기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잘못되거나 불만스러운 조항이 있으면 절충하면 된다. 이제와서 절충도 싫고, 다된 밥에 재 뿌리기식 행태를 보이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법을 아예 바꾸지 말라는 요구는 지나친 억지다.'(신문 사설)

반대를 이유로 벌이는 집단행동은 용납하기 힘들다는 분위기다. '새로운 입법이나 법 개정에 대한 반발과 저항은 사회의 건강성 확보를 위한 여과 과정이기도 하다. 다만 어느 경우이든 집단 이익에만 매달려 전체를 그르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의료는 환자의 생사를 좌우할 수도 있는 중차대한 분야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환자를 볼모로 하는 진료 공백은 피해야 한다.'(매일신문 사설)

▨ 환자주권주의

이번 개정안의 큰 방향 가운데 하나는 환자 권리 보호다. 질병의 내용과 치료 방법 설명 의무화, 진료 기록 위·변조 금지, 만성질환자 처방전 대리 발급 허용, 표준진료지침 제정 등이 골자다.

의사협회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특히 표준진료지침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환자의 증세는 매우 다양해 획일화하고 규격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에 환자의 특성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치료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만큼 의료행위에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표준진료지침이 제정된다면 의사는 그 환자의 상태를 고려치 않고 틀에 박혀 기계적으로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표준이라는 미명 하에 진료의 하향평준화와 의료사회주의를 자초하고 말 것이다.'(의사협회 관계자 인터뷰)

그러나 지금까지 의료법은 환자주권주의에 그다지 충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고, 개정안 역시 미흡하다는 지적이 적잖다. '지금 환자들에게 가장 힘든 문제는 의료비와 의료인에 대한 정보부족이다. 수술할 필요가 없는 환자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약효가 높은지 알 수 없는 고가약 처방이 일상화됐고 곧 돌아가실 노인들에게 산소호흡기를 강요하고 그것도 비싼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환자와 가족들이 치료하는 의사와 병원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신문 칼럼)

표준진료지침은 의학 관련 학술단체들이 전문가적 시각에서 자율적으로 만들도록 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지적한다. 필요성에 대해서조차 부인하는 건 지나치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의료기관간, 의료인간 의료 수준의 현격한 차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국민들에게 질적으로 일정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준으로 표준진료지침 조항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경실련 성명서)

▨ 시민단체의 우려

의료법 개정의 또 다른 축은 규제 완화를 통한 의료산업화다. 한·양방과 치과 협진 허용, 환자 유인·알선행위 부분 허용, 프리랜서제 도입, 의료법인 합병 허용, 부대사업 범위 확대 등 지금의 의료서비스 형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정부는 의료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여러 가지 제도를 개선했다고 홍보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의료서비스 공급, 의료기관 경영합리화, 의료자원의 효율화 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의 비판은 따갑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 '환자권리 강화'가 주요 내용으로 담겨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개정안에 담긴 내용은 그동안 판례상 인정되어 온 권리를 확인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을 뿐, 환자권리 강화를 위한 획기적인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에 반하여 병원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드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의료의 공공성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연대회의 성명)

의사들은 침묵하지만 의료산업화가 결국은 국민과 의사 모두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 입장에서는 양·한방협진병원제도와 같이 의료접근성과 편의성이 좋아지면, 대형할인마트에서 더 많이 물건을 사듯, 의료비용이 줄지 않을 것이다. 의료인 입장에서도 유리하지 않다. 거대자본과 결합한 의료인은 의료시장을 독과점하여 재벌로 성장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의료인은 평사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환자유치능력이 떨어지는 의료인은 도태될 우려가 있다. 부대사업의 부도로 입원중인 환자가 쫓겨나고, 범죄자금이 의료법인을 만들어 돈세탁을 할 수도 있다.'(신문 칼럼)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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