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 권의 책)멧돼지가 기른 감나무

예전 초등학교 교문 앞에는 종이상자에 담긴 노란 병아리들의 삐약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지곤 했다. 노란 개나리처럼 아지랑이가 피어오른 봄날, 종이박스에 실려 나온 병아리들을 구경하느라 코흘리개들은 집으로 가는 것도 잊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어쩌다 한두 마리를 종이봉투에 담아 안고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의기양양 할 수 없었다.

100원짜리 병아리는 하루 이틀을 못 넘기고 까무룩 졸다 저 세상으로 가버리기 일쑤였지만 간혹 중닭 정도로 살아남은 녀석들은 제법 불긋불긋한 털을 휘날리며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개중에는 다 크기도 전에 할아버지 몸 보신용으로 제 한 몸 희생하는 놈도 생기곤 했는데, 어린 병아리 주인은 저녁에 맛있게 먹은 보양식의 정체를 뒤늦게 알고 서럽게 울기도 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그것도 흙땅 한 번 밟을 일 없는 도시에서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측은한 마음부터 든다. 미안하기까지 하다. 기껏해야 그림책으로 동물을 먼저 만나는 아이들을 위해 자연과 친해질 수 있도록 풀어놓아 주고 싶다면 이 또한 부모의 욕심일까.

'멧돼지가 기른 감나무'(이상권 글/(주)사계절 출판사 펴냄)는 생태동화집이다. 닭, 토끼, 여우, 애벌레, 멧돼지 등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만나는 동물들이 주인공이다. 동물이 등장하는 생활동화인가 싶어 책장을 넘기니 어른 소설만큼 못지않게 재미있고 교훈이 가득하다. 토속적으로 풀어 쓴 동물우화라고나 할까.

이 책은 교훈을 담고 있지만,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 점이 가장 큰 미덕이다. 책 속 단편 '외눈박이 암탉'을 보면 '닭대가리' 운운하던 것이 얼마나 편견인지 깨달을 수 있다. 주인공 소년에게 잔뜩 미운털이 박혀 숲 속으로 도망쳤던 흰병아리. 얼마 지나지 않아 새끼들을 거늘이고 당당히 금의환향한다. 사람들은 닭을 멍청한 동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외눈박이 암탉은 교묘하게 족제비의 공격을 피할 줄 알고, 어디로 숨어야 할지 귀신같이 안다. 그래서 몇 해를 너끈히 살아낸다. 자존심 강한 도도한 닭이다.

아이들이 이해하기는 힘들성 싶지만 자연과 인간은 하나가 된다는, 인간도 언젠가는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는 순환의 원리에 대해서도 정감있게 전달하고 있다. 외눈박이 암탉을 늘 대견해하던 소년의 할머니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암탉을 한 종일 솥에다 삶아 뜯어 먹는다. 억센 뼈는 누렁이의 몫이다. 그리하여 '외눈박이는 할머니와 누렁이 몸이 되었다.'

'멧돼지가 기른 감나무' 편에 나오는 멧돼지는 '뜸돌양반'으로 의인화돼 있다. 사냥꾼에 의해 아내를 잃었고 허벅지에 총을 맞은 뜸돌양반은 잃어버린 자식의 곁을 떠나지 못해 산을 맴돈다. 사냥꾼과 팽팽한 싸움을 벌이면서 기개와 용기를 가르쳐 준다.

인간과 동물이 자연의 한 구성요소로서 동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다면 좋겠다.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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