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지역 최장수기업(1955년 설립) 가운데 하나이자, 대표적 우량기업인 조일알미늄의 이재섭(67) 회장. 그는 최근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MS저축은행(옛 조일상호신용금고)에 대해 220억 원의 증자를 결정했다. 투자를 꺼리는 세상이라는데, 고희(古希)를 바라보는 노(老) CEO로서는 선뜻 내놓기가 쉽지 않은 돈이다.
소식을 들은 기자는 지난 12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MS저축은행 본점 3층에 있는 그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방안을 둘러보니 그야말로 '골동품' 투성이였다. 그 많은 오랜 물건 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띈 것이 20년은 넘었음직한 TV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아, 저 TV요? 1977년 일본 거래처 사장님으로부터 선물받은거죠. 벌써 30년이 됐네요. 멀쩡한걸 버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물건을 좀처럼 버리지 않습니다. 돈이란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곳에만 써야합니다."
그는 돈을 쓰는데 있어서 신중해야하지만, 써야할 곳에는 반드시 쓰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했다. MS저축은행에 대한 증자도 마찬가지. 17년전 금융업에 진출한 이상, 제대로된 저축은행을 만들어야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MS저축은행은 220억 원 증자가 될 경우, 실납입자본금이 501억 원을 기록하게돼 대구경북 최대는 물론, 전국 110개 저축은행 가운데 12번째 큰 우량저축은행이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돈 급한 서민들이 많은데 아직 은행문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비싼 이자를 물고 사채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죠. 어려운 지경에 놓인 서민들에게 저축은행같은 서민금융기관은 큰 힘이 됩니다."
그는 지난해 매일신문을 비롯, 몇몇 언론에 올랐다. '어느 노신사가 경북대병원에 1억 원의 후원금을 전달하고 사라졌다.'는 내용. 신문에 이름은 나오지 않았지만 주인공은 이 회장이었다.
"대구·경북에 '브랜드'가 있어야해요. 경북대병원이 의료기관으로서 대표 브랜드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에 몰래 후원금을 가져다줬는데, 병원 측이 이 사실을 언론에 알려버렸지. 상당히 당황했어요. 이름은 신문에 안났지만 아는 사람은 알게돼버렸지."
30년된 TV를 사용하는 그는 매일신문에 이따금 한번에 수백만 원의 이웃돕기 성금을 보내는 것을 비롯, 계열법인인 춘곡장학회를 통해 7천700여 명에게 장학금 34억여 원을 지원했다. 저금리로 장학금 지원액이 줄자 사재를 또다시 털어 지난 2005년 19억 원, 지난해 23억 원을 추가 출연했다.
"얼마전 누군가 저를 보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하더군요. 기업인들은 바빠서 시간을 내 사회봉사하기가 어렵습니다. 시간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저는 미안한 마음에 제 주머니를 조금씩 털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어려운 말은 모르고, 그냥 도리를 다할려고 노력합니다."
◆기업인에게 힘을 주세요
그는 기업인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성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전히 지역 사회는 기업인들을 보는 시각이 좋지 못해 너무나 아쉽고 섭섭하다는 것.
"대구·경북지역 절대 다수 기업이 중소기업이자, 설립자가 책임경영을 하는 이른바 '오너CEO기업'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사장님은 편하다'는 인식을 갖기 쉽지만, 기업인들은 피를 말리는 일과의 연속입니다."
그는 조일알미늄도 마찬가지 경험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1980년 당시 시설투자를 했다가 판매부진으로 한달에 1억 원이 넘는 적자 행진을 겪으면서 무려 1년여동안 12억 원의 손실을 기록, 잠을 이루지 못했던 일, 외환위기 당시 치솟는 환율로 불과 4개월동안 250억 원의 적자를 보면서 절망했던 일 등 상상도 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겪었다는 것.
"사람들은 지금 현재의 기업 위상만 봅니다. 하지만 '오늘의 기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기업인들의 땀의 가치는 잘 인정해주지 않지요. 저는 2세 경영인이지만 숱한 고생을 했습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1970년대 일본 기술자의 집에서 숙식을 하며 땀을 흘렸습니다.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탓인지, 자다가 악몽을 꾸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기업인들이 노력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줘야합니다. 그리고 사회가 그 땀을 인정해줄 수 있어야합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이재섭= 경북고와 한양대를 졸업한 뒤 선친이 설립한 조광산업사(1955년 설립)에 들어가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인 조일알미늄으로 확대·변신시켜 오늘날 규모로 키워냈다. 조일알미늄 외에 (주)조광, MS저축은행, 제주 마리나호텔, 학교법인 상서학원(상서중.상서여자정보고), 윤당교육재단(조일공고), 춘곡장학회 등의 계열사를 갖고 있으며 30대부터 대구상공회의소 상공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지역의 대표적 기업인이다.
▷MS저축은행= 이재섭 회장이 1990년, 경북상호신용금고 2개 지점을 인수한 뒤 '조일상호신용금고'라는 이름을 내걸면서 영업이 시작됐다. 2000년 말 갑을.동아.수평.신우.아진금고 등을 합병, 규모가 커졌다.
지난해 6월, MS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지난해말 현재 자산규모는 3천465억 원 규모로 대구경북지역 저축은행 가운데는 가장 크다고 은행 측은 설명했다.
현재 대구시내에 범어동과 동인동, 서문로 등 3곳의 영업점을 내고 있고, 경산과 상주에도 각각 1곳씩 점포를 갖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