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사람을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그것도 설이나 추석같은 명절이면 더욱 그렇다. 5년째 거리를 떠돌고 있는 김창렬(55·가명) 씨는 올 설 명절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을 작정이다. 지척이지만 마음 속 거리는 수천리도 더 되는 셈이다. 지난 1999년 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해 5천만 원을 날린 뒤 몇 년 지나지 않아 사업마저 부도나면서 무작정 거리로 나선 것. 김 씨는 "집이 서구 비산동이어서 버스만 타도 갈 수 있지만 아내와는 이혼했고, 출가한 딸 자식 얼굴 볼 낯도 없어 올 설도 그냥 거리에서 보낼 생각"이라며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설 연휴를 닷새 앞둔 12일 오후 지하철 대구역 앞 광장. 겨울답지 않은 볕 아래 노숙인 4명이 막걸리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들은 적게는 1개월, 많게는 1년이 넘도록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들에게 설은 다른 사람들의 명절일 뿐이다. 그저 고향행보다 마음 편한 잠자리가 더 그립다.
3년 전 포항, 구미 등지에서 철공 일을 하다 실직해 노숙에 나섰다는 박모(42) 씨. 1년 전쯤 김천 고향집에 다녀왔다. 박 씨는 "고향엔 나이 많은 아버지만 계셔 가더라도 반겨줄 이도 없다."고 했다. 지난 외환위기때 구미공단에서 일하다 실직해 18살 때부터 노숙을 했다는 전모(27) 씨는 지난 설에도 고향인 울진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전 씨는 "부모님 잔소리 때문에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며 "이번 설에도 대구역 부근에 머무를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북구 고성동의 한 쪽방에서 만난 김모(59) 씨에게도 설은 남의 일이다. 김 씨는 "이런 데 있는 사람들이 갈 곳이 있겠느냐."며 "갈 곳이 있어도 빈 손으로 찾아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멋쩍어 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동대구역에서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하는 대구쪽방상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명절에 준비한 식사량은 평소와 같은 200인분. 예상대로 준비한 식사가 동났다. 천영익 대구쪽방상담소 실장은 "행정기관에서 추정하고 있는 노숙인은 어림잡아 1천여 명이지만 명절이라고 해서 고향에 가는 노숙인은 거의 없는 것 같다."며 "올 설 명절에도 지난 명절과 비슷한 양의 식사를 준비할 계획으로 갈 곳 없는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따뜻한 밥 한 그릇밖에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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