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빛이 바람에 날리듯이
남쪽바다에 햇살이 날리네
바야흐로
갈매기 두어 마리
무심(無心)끝에 날으고
돛단배 가물가물
먼 나라로 갈듯이 떴네....(한 경치(景致), 박재삼)
바다위에 섬이 떠있다. 다리가 섬과 섬을 잇고 바다와 바다를 갈라놓는다. 이 연륙교(連陸橋)로 인해 섬은 육지가 되었고 바다는 둘로 나뉘었다. 여전히 섬을 바다가 둘러싸고 있지만 어디까지가 바다고 어디까지가 육지인지 경계선을 그을 수 없다. 굳이 '다도해'라고 이름붙이지않더라도 남해바다는 점점이 솟아오른 섬때문에 살아있다.
이제 그 섬에 가기 위해서는 걷거나 자동차를 타면 된다. 바다가 섬을 만들었지만 다리는 바다를 가르기도 하고 잇기도 한다. 경남 사천에서 다리를 건너 창선도에 가려면 삼천포대교와 모개섬과 초양섬을 잇는 초양대교, 늑도대교를 지나 창선대교 등 무려 4개의 다리를 지나야 한다. 바다위 다리로 이어진 창선도 가는 길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될 정도로 경관이 빼어나다.
창선도로 접어들어 곧바로 왼쪽아래 작은 어항으로 들어섰다. 삼천포항이 눈앞에서 아득해지는 대신 창선대교의 아치난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다리 아래로 작은 배 한 척이 지나간다. 사천 혹은 삼천포에 가면 그저 잔잔한 남해바다의 그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바다위에 가로놓인 다리가 아름다워서 좋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그 다리를 지나 잠시 차를 세우두고 바다 위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
남해안 낮은 언덕 위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대더니 붉은 동백꽃잎을 바람에 흩날려 버린다. 봄은 남쪽으로부터 온다. 봄기운은 한달음에 바람에 묻어 북상(北上)중인 모양이다. 삼천포 시인 박재삼은 이 노산공원 언덕에 올라 '봄이 오는 완연한 저 길을, 차마 손짓할 수 없었다.…'(봄이 오는 길)고 했다. 삼천포항 건너 바라보이는 초양도의 양지바른 언덕은 온통 초록색이다. 유채밭이다.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에 바다를 건너온 바람도 촉촉하다.
삼천포항에서 갓잡아 내린 생선의 비릿한 냄새를 맡아보고는 대방진굴항 쪽으로 걸었다. 임진왜란때 거북선을 숨겨두었다는 작은 군항(軍港)인 이곳에는 마침 작은 배 몇척이 정박하고 있다. 사천의 옛 지명인 삼천포 번지수를 달고있는 굴항 어귀에서는 대여섯명의 아낙네들이 바지락을 까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사진기를 든 모양새를 보고는 손을 휘휘 내젓는다.
사천바다는 참 좋다. 흰색과 빨간색 두 쌍의 등대가 지켜주는 삼천포 옛 항구에 가면 더더욱 좋다. 셔터를 누르면 그대로 한 장의 '그림엽서'가 된다. 삼천포항에서 실안해안도로 쪽으로 달렸다. 낚시터를 지나 오른쪽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멀리 사천대교가 보인다. 저물녘 이곳 해안도로 끝에서는 반드시 저녁노을을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해안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의 하나로 꼽힌 이 곳에서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가끔씩은 볼 수 있다.
사천은 이처럼 바다와 섬,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 바다 제대로 보고싶다면 유람선을 타자. 유람선을 타고 해안을 따라 돌면 아기자기한 섬과 바다, 다리와 항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노을이 지고 항구에 하나둘씩 불이 켜지면 다리는 또다른 밤풍경을 연출해낸다. 역시 다른 곳에서는 절대 보지못할 장관이다. 오죽했으면 함께 노을을 보고있던 연인의 손을 놓아버릴 정도라 할까.
겨울바다가 그립다면 남해바다로 떠나자. 지난 해 여름 북적이던 해수욕장의 추억을 찾을 수는 없지만 그곳에서는 조용하면서도 치열한 삶의 모든 것을 되돌아볼 수 있다.
글·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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