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닷새 앞둔 13일 오후 서문시장. 끝없이 이어진 자동차 행렬과 바쁘게 움직이는 행인들이 뒤엉켜 모처럼 시장은 활기에 가득 찼다. '설맞이 행사'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있는 등 장터는 대목의 분위기가 한껏 연출하고 있었다.
최태경 서문시장상가연합회 회장은 "이번 설에는 특히 1월 말부터 발행된 상품권이 시민들 소비 심리를 자극해 톡톡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을 찾는 소비자들도 평소보다 20% 정도 늘었다고 평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속 빈 강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겉으로 보기는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지만 곧바로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는 것. 이로 인해 상인들은 피부로 느끼는 체감 경기는 지난해보다 더 못하다고 말했다.
15년 동안 옷 장사를 했다는 장문정(67·여)씨는 "사람들은 평소보다 북적이지만 막상 옷을 사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푸념했다. 그 만큼 경기가 좋지 않다보니 소비자들도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는 다는 것이다.
건어물가게 직원 전세정(39·여)씨는 "지난해 설보다 손님이 30~40% 줄었다."고 전했다. 특히 단체 주문 고객이 확연히 줄었다는 것. 예년 같으면 설을 앞두고 20일 전부터 대목 분위기가 나서 2곳의 카운터가 쉴 틈이 없었는데 지금은 한 곳의 카운터가 쉬는 경우가 잦다고 덧붙였다. 매년 가게 앞에 마련했던 강정 매대도 올해는 준비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씨는 "지난해 팔리는 기간이 15일도 안 돼 '알바'비도 못 챙겼기 때문에 올해는 아예 강정매대를 설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맘 때면 '설빔 특수'를 누렸던 아기옷 가게들도 예전에 비해 사정이 좋지 않다고 했다. 아기옷 가게를 하는 김계양(36·여)씨는 "주로 아기 엄마들이 설빔이나 신학기용으로 찾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지난해에 비해 매출이 30%정도 줄었다."고 답했다. 특히 최근엔 주부들이 인터넷 판매에 익숙해 환불이나 교환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장사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아기 한복을 파는 한수진(37·여)씨는 "최근엔 한복을 대여하는 곳도 많고 인터넷이나 대형마트 등의 판매처가 많이 생겨 소비자 구매가 흩어진다."며 "손님이 찾아오더라도 꼼꼼히 여러 곳을 둘러보지만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경북 재래시장 상인들의 발길도 줄어들었고 막상 사가더라도 양이 예년만 못하다는 것. 한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300만~500만 원어치를 사가던 사람들도 올해는 100만 원어치 밖에 사가지 않는다."고 전했다.
대구에서 서문시장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칠성시장에서도 상인들의 푸념이 나왔다. '설날맞이 대 바겐세일'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을 붙여두고 대대적인 판매에 나선 한 대형정육가게에도 경기는 반영되고 있었다. 성경호(36) 사장은 "판매가 지난해 설과 비교해 절반 수준"이라고 딱 잘라말한다. 보통 10만 원짜리 선물세트를 사던 사람들도 5만 원짜리 선물세트로 확 줄인다고 한다. 성 사장은 "현수막도 붙이고 광고도 했지만 별 효과가 없다."고 했다.
설을 맞아 잠시 강정 판매에 나섰다는 백학제(74)씨도 "설이 닷새 밖에 남지 않았는데 판매가 좀처럼 안 된다."며 "강정은 안 팔리면 재고 없이 곧바로 버려야 하는 한철 장사인데 이렇게 안 나가니 걱정"이라고 했다.
지금쯤 한창 바빠야 할 청과 시장에도 일손을 놓고 있는 상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상인들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전체적으로 과일 값이 30% 오르면서 판매가 더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울상을 짓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시장을 찾은 알뜰파들은 '설맞이 장보기'에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북어와 명태, 김 등을 샀다는 박순희(42·여·대구시 동구 봉무동)씨는 "예전부터 좀 많이 살 때는 꼭 시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재래시장에 오면 품목도 다양하고 대형마트에 비해 가격도 많이 싸기 때문이라는 것. 돌이 갓 지난 아기를 위해 상·하의로 1만 원, 장난감 2만 원어치를 샀다는 김유정(31·여·대구시 달서구 성당동)씨는 "대만족"한다며 "재래시장에서 잘 만 고르면 훨씬 적은 돈으로 괜찮은 제품을 고를 수 있다."고 웃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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