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가난 벗어나기'

13세기 말 중국 宋(송)나라를 방문한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南宋(남송)의 당시 수도 임안을 '지상의 천당'이라고 묘사했다. 르네상스 때를 대표하는 도시 베네치아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이 같은 도시의 번영과는 달리 농민들의 삶은 처참했다고 한다. 늘어나는 관리들에 대한 급여 지출, 잦은 전쟁에 드는 돈과 패배에 따른 보상 등을 모두 농민들이 떠안아야 했다.

◇'宋史(송사)'에는 '民窮(민궁) 兵弱(병약) 財 (재궤) 士大夫無恥(사대부무치)'라고 당시를 요약한 기록이 나온다. 요샛말로 풀이하면 '국민은 가난, 군대는 부실, 경제는 바닥, 지도층은 뻔뻔'이지 않은가. 마르코 폴로의 눈에도 겉보기엔 천당으로 보였던 송나라가 심한 양극화 현상을 앓았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나라의 양극화 현상도 심각해 송나라의 경우를 과연 지난날의 남의 일로만 볼 수 있을 건가.

◇우리 사회에서 일단 貧困層(빈곤층)이 되면 가난 벗어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한다. 어제 서울대에서 열린 경제학 관계 학술대회에서 빈곤 탈출 가구 비율이 2003년 이후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논문 '세대별 빈곤 진출입 결정 요인 연구'가 발표됐다. 이 논문은 우리의 '가난 구조 고착'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조용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과 김기승 국회예산정책처 경제정책분석팀장에 따르면, '상대 빈곤' 상태에서 1년 만에 벗어난 소위 '빈곤 탈출' 가구 비율이 2003년 이후엔 26.5%다. 2000년부터 3년간 38%가 조금 넘었으나 그 이후 2003년까지 30.1%로 떨어진 뒤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분석이다. 1년 만에 '상대 빈곤' 상태에 접어든 '빈곤 진입' 가구 비율 역시 8.2%까지 계속 하락해 왔다고 한다.

◇20여 년 전, 우리나라의 한 탈옥수가 우리 사회를 '無錢有罪 有錢無罪(무전유죄 유전무죄)'라고 비꼬아 유행어로 끊임없이 확대'재생산돼 오기도 했다. 더구나 한 탈옥수의 이 외침이 이젠 법정의 문제를 뛰어넘어 가난 자체가 '벗을 수 없는 짐'이며, '죄'가 되는 세상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가난 벗어나기의 어려움이 그 대물림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지도층 뻔뻔'은 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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