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역술은 밀접한 관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2년 민자당 대선 후보가 되자 여권은 당시 정보기관을 총동원해 유명 역술인 등을 통해 'YS 대세론'을 전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주영 당시 국민당 후보 측은 "정 도령 시대가 왔다"며 역술을 동원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선친의 묘를 이장한 뒤 기어코 대권을 잡았다. 하지만 예언은 빗나간 경우가 훨씬 많았다.
육영수 여사의 암살 가능성을 경고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비참한 종말을 예언했다고 알려진 학 역술인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렇게 예언했다. '앞으로 한국의 운명을 짊어질 30, 40대 젊은 층들이 정치의 세대교체를 이뤄낼 것이다. 현재 인기와 무관하게 참신한 인물이 새로운 이슈를 들고 나와 대권을 잡을 것이다. 이제 3김 시대는 지나갔다.' 하지만 대선에서는 김대중 씨가 당선됐다.
작가 고원정씨는 '마지막 대권'이라는 소설에서 대선 신한국당 후보는 이수성 씨가 된다고 했다. YS의 마음과 민주계 지지를 얻은 이 씨는 이회창 대표와의 경선 끝에 승리한다는 것. 물론 소설이지만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했다. 고 씨는 지난 1991년에도 14대 대선과 관련한 가상정치소설 '최후의 계엄령'에서 박철언, 박태준 씨의 탈당 등 정치적 사건을 예언해 화제가 됐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도 '천기'를 앞세운 각종 설이 난무했다. 당시 정치권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의 안개 속. 역술인들은 선두를 달리던 3인이 아닌 군인 출신부터 여성대통령이 나올 것이라는 색다른 주장까지 펼쳤다.
계룡산에서 수도했다는 한 도인은 "지금 거론되는 후보는 대통령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무현 씨는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무속인 심진송 씨는 "해와 달을 성씨로 갖고 있는 여성대통령이 나와 아주 근소한 표차로 당선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광명당을 창당해 대선 출마를 선언한 명승희 씨를 지목했지만 명 씨는 결국 출마조차 하지 않았다.
한 역술인은 독재자형인 리더가 정치권에 등장해 대권을 잡을 것이라고 했고, 종교인 김모씨는 당과 당이, 사람과 사람이 갈라지는 혼란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장세동 씨라고 주장했다. 한 인터넷 역술사이트 대표는 "이인제씨가 대통령이 된다."고 딱부러지게 예언했지만 결국 틀렸다.
이 예언을 믿고 이인제 씨와 줄을 닿기 위해 일부 기업인들이 줄을 섰다는 후문까지 나돌기도 했다. 정치권 인사들이 줄줄이 찾았다는 한 무속인은 2001년 12월 예언에서 "아직 눈에 띄는 사람이 없다. 2002년 3, 4월이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당시 노무현 후보는 한창 활동을 하던 중이었다. 노 후보를 보지 못했다는 말인가?
물론 결과론적으로 맞는 예언도 있었다. 2002년 9월 발간된 '권력과 풍수'에서 우석대 김두규 교수는 '선영의 기운'이라는 측면에서 노무현 후보가 가장 좋다고 밝혔다. 노 후보를 주목하는 술사들 사이에선 비결집 '숙신비결'이 떠돌았다. '임오년에 문둥이 상을 한 사람이 왕이 된다.'는 내용인데, 문둥이 상이란 울퉁불퉁한 서민적 얼굴의 노 후보를 뜻한다는 해석이다. 또 한 역학연구소 소장은 "이회창과 이인제는 금수가 용신(用神)인데 올해는 불(火)의 기운이 강해 맥을 못 춘다."고 예언하기도 했다.
선거와 관련해 역술인 중에는 'XX당에 운이 없다. 제3의 인물이 나올 것이다.'라고 천기누설에 극도로 조심(?)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예언해놓고 "내가 맞췄다."고 자랑하는 이들도 있다. 정해진 대운이 있다면 역술인들마다 왜 말이 다른 것일까? 사주를 잘못 해석한 탓일까, 점괘를 잘못 뽑은 탓일까? 그것이 의문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한덕수 "24일 오후 9시, 한미 2+2 통상협의…초당적 협의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