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장터의 흥겨움이 남아 있을까. 뻥튀기 소리와 장꾼들의 힘찬 목소리, 그 사이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고함소리... 역시 옛날 사진에서나 보던 풍경이었다.
이런 곳을 찾기란 불가능했다. 농촌에는 젊은 사람도, 아이들도 없다. 어디서 그런 풍경이 나오겠는가. 대구 인근이나 김천, 안동, 영천 같은 도시에서 열리는 장날에는 그나마 활기가 느껴졌다. 상인도 많고, 주말이면 가족 단위로 찾는 이들도 꽤 있다.
▼장터는 사교모임장?=시골로 갈수록 예전같은 활발함은 잃었다지만 구수함과 인정만은 여전했다. 의성군 안계장은 쌀 집산지 답게 면(面)규모의 장으로는 보기 드물게 컸다. 2개의 대형마트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장터에는 수백명이 들끓었다. 노인들은 사람 구경을 하고 싸고 다양한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노상에 수십가지 약초를 널어놓은 상인도 있고 콩, 쌀, 깨를 파는 할머니 모습도 있다. 톱날을 벼리는 사람도 있고 대나무 광주리를 파는 좌판도 있다. 상점은 수십년이 넘은 듯 판자로 엉기설기 만들어져 정감이 갔다. 한약재를 파는 서범식(73)할아버지는 "산에 올라가 약초를 캐거나 대구 한약재방에서 구해온다."면서 "도시 보다 훨씬 싸다."고 했다. 서 할아버지는 아는 사람이 오면 황귀 몇뿌리를 끼워주거나 덤으로 다른 약제를 주기도 했다.
노인들에게 장터는 하나의 큰 사교장이었다. "와! 오랜만이야." "살아있었네!" 인사말이 자주 들려왔다. 남자들은 지인을 만나면 함께 인근 포장마차나 음식점으로 옮기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재미있는 것은 시골장에는 주인은 1명이지만 더부살이(?) 할머니도 4, 5명이나 됐다. 의성군 금성면 탑리장에서 만난 윤태암(81)할머니는 "친구가 장날에 물건을 팔러나오면 인근에 사는 할머니들이 장터에서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또하나의 추억으로?=지난 13일 찾은 문경군 동로면의 동로장. 길 양쪽 10m 거리에 6, 7명의 상인이 좌판을 펴놓고 있었다. 장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너무나 소규모였다. 평소 5일장이 열리면 생선장수, 옷장수, 풀빵장수 등 3명만 고정적으로 장사를 했는데 설을 앞둔 탓인지 조화(造花)장수, 채소장수 등 몇명이 더 나왔다고 한다. 면전체 인구가 2천명에 불과한 산골 마을다운 풍경이다.
좌판 앞에서 만난 전용순(85)할머니의 얘기. "동로장은 20년전만 해도 대단했지. 장날이면 산골 구석 구석에서 몰려와 새벽부터 하루종일 붐볐는데 이제는 다 옛말이야. 겨울철에는 눈 때문에 사람들이 고갯길을 넘어오지 못해 장이 건너뛸 때가 많았지. 모두 장날만 손꼽아 기다리곤 했지."
이곳 뿐만 아니다. 자그마한 마을의 5일장은 썰렁하기 짝이 없다. 찾아오는 사람이 채 100명도 되지 않은 곳이 상당수다. 지난 6일 찾아간 의성군 금성면 탑리장에도 설이 다가왔는데도 상인 수십명에 손님 수십명 정도였다. 지난 13일 예천군 풍양장에는 사람 수가 제법 됐는데 한 상인은 "설앞이라 그렇지 보통 장날에는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했다.
60, 70년대 경북 전체에 3백개도 넘던 시골장은 이제 90개 안팎에 불과하다. 그것도 읍(邑)지역을 제외하면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상인 수가 계속 줄어들다 길가에 할머니 1, 2명이 나물 좌판만 펴놓고 있다 결국은 사라지는 과정을 밟는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기자도 불혹을 훌쩍 넘긴 젊지 않은 나이건만 시골 장터에서는 가장 젊은 편에 속한다는 점이었다. 농산물을 가져와 파는 사람도 60, 70대였고 사가는 사람도 비슷한 나이대였다. 여든살이 넘은 분들도 꽤 있었다. 가뭄에 콩나듯 장년층으로 보이는 이들이 한둘 보일 뿐이다. 산골 일수록, 면(面)단위로 갈수록 그 정도가 심했다.
이때문인지 시장통에서 왁자지끌한 소리도 거의 들을 수 없었고 큰 활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나 차분하고 가라앉은 듯한 분위기였다. 시골장에 가면 그 지역 노인인구의 비율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장 보고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들을 촬영하는 취재팀에게 70대 할머니가 말을 붙여왔다. "늙은 할매들 밖에 없지?" 그말을 듣고 시장 주위를 다시 둘러보니 실제로 그랬다. 할머니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뿐, 할아버지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영감들은 일찍 다 죽었제. 시골에서는 워낙 술을 많이 마시니까. 자업자득이지."
10, 20년후 이들마저 모두 세상을 떠나고 나면 시골에서는 장터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조선 후기 보부상들이 시장과 시장을 왕복해 다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5일장. 또하나의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게 슬프다.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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