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잉글랜드 축구리포트)맨체스터 축구팬들의 행복한 고민

풀햄FC 홈구장인 런던 크레이븐 코티지의 최근 티켓 판매 상황을 보자. 7일 있었던 한국과 그리스의 A매치 티켓을 사면 4월에 있는 맨체스터 시티전 티켓을 무료로 준다. 그러나 2월 말에 열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는 한달 전부터 매진이다. 하위권 성적에 스타 플레이어도 부족한 맨시티와의 경기에 관심을 갖는 런던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맨체스터에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성적 차가 확연한 맨유와 맨시티가 겨루는 '맨체스터 더비'가 잉글랜드의 유명한 라이벌 전으로 꼽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단 맨유와 맨시티 팬의 숫자가 비슷하다. 또 맨시티의 구장도 맨유의 올드 트래포드 구장 만큼이나 멋지다. 잉글랜드에서 보기 드문 '브이(V)'자 형태의 외관 덕분에 영국 건축가 협회가 선정하는 '최고의 건물 10선'에 들기도 했고 규모도 잉글랜드 구장 중 4번째로 크다.

맨체스터 시티 홈구장에서 만난 크리스 닐드라는 직원은 자신이 왜 맨시티의 팬이 되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단지 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까지 모두가 맨시티의 열렬한 팬이었고 자신도 10살 때부터 시즌 티켓을 갖고 있었을 뿐이라고 답했다. 맨체스터 시민들은 화려한 플레이나 성적으로 지지하는 축구팀을 결정하지 않는다. 크리스와 같이 아버지가 응원하는 팀이 더 중요하다. 응원하는 팀이 이렇게 정해졌다고 해서 축구가 재미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요즘의 맨체스터는 축구로 얻는 시민들의 즐거움을 외부인이 빼앗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도시는 '맨유의 맨체스터'를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찾아드는 관광객을 맞는 데 몰두해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웨인 루니의 얼굴이 그려진 2층버스가 도시를 오가고, 관광안내지도에는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에 대한 설명만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를 따라 올드 트래포드에 가보면 완연한 '시장'이다. 구단 가이드는 투어를 마친 다양한 국적의 팬들을 메가 스토어로 이끌어 지갑을 여는 데 열중한다. 이렇게 팔린 맨유의 티셔츠를 입고 맥주를 마시는 외국인을 맨체스터의 어느 펍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더 심해진다고 한다. '맨유 팬의 맨체스터'다.

크리스는 필자가 맨시티 구장에서 만난 첫 번째 한국인이라고 했다. 간혹 호기심에 구장을 찾는 외국인을 만날 수 있는데 맨체스터에는 맨유 팬과 동일한 수의 맨시티 팬이 있다고 말하면 잘 믿지 않는다며 서운해 했다. 시민들의 최대 축제였던 '맨체스터 더비'도 이제는 손님 치레를 하는 날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더이상 맨체스터도 축구팬으로 살아가기에 마냥 즐거운 도시는 아닌 것 같았다.

박근영(축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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