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해석/ 제드 레벤펠드 지음·박현주 옮김/ 비채 펴냄
요즘 인기 드라마인 주몽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전개하는 이야기에는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배어 있다. 당시의 기록이 워낙에 미미하기에 오히려 허구가 개입할 여지가 더욱 많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기도 하다. 분명히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을 때 사람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어느 누구도 거기에 대해 가타 부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은이 제드 레벤필드도 역사의 한 장면에 주목했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서 20세기를 연 위대한 사상가 중의 하나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관한 항목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오래된 흑백 사진 한 장이다. 프로이트가 1909년 제자인 산도르 페렌치, 카를 융, 어니스트 존스와 함께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우스터 시에 있는 클라크 대학을 방문했을 때 찍은 기념 사진이다.
프로이트는 당시 클라크 대학 학장 그랜빌 스탠리 홀의 초청을 받아 미국을 방문해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기념강연을 했다. "이는 프로이트의 일생에서 유일하게 학계에서 그의 업적을 인정받은 사건"이었기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증거물이다. 그러나 지은이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공적인 미국 방문 이후 프로이트는 말년에 늘 미국에서 어떤 외상을 입은 것처럼 말했다고 한다. 미국인을 '야만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전부터 자신을 괴롭혀온 몸의 질환도 미국 탓으로 돌릴 정도였다.
무엇이 프로이트를 이렇게 미국을 싫어하게 하였을까? 궁금한 일이지만 프로이트의 전기 작가들도 곤혹스러워할 만큼 그 원인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지은이는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실마리를 '허구적 실화(faction)'로 창조해 냈다. 물론 철저한 조사를 통해 역사적 배경을 탄탄하게 깔고 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프로이트와 융의 서적과 편지, 다른 사람의 저작을 꼼꼼히 참고해 사실적인 허구를 풀어내고 있다.
당시의 뉴욕 풍속사도 손에 잡힐 듯이 세세하게 그려냈다. 남북 전쟁 이후 내부적인 불안 요인 없이 탄탄케 산업화를 추진한 미국, 그리고 그 중심에 선 뉴욕은 건축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다. 높아가는 마천루만큼 인간의 어두운 욕망도 그 영역을 확장시키는 시대였다. 초고층 빌딩은 바로 남성성의 상징이었고, 이런 가운데 단순한 욕망거리로 전락한 여성이 어느 고층 빌딩에서 살해당한 것과 이후의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이 책의 주내용이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제목처럼 '살인의 해석'이 프로이트의 추종자인 영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다른 피해자의 정신을 분석하던 영거는 여인의 정신분석을 하면서 오히려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건, 이를 헤쳐나가던 영거는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는 결국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비밀스런 욕망이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설명하려면 반드시 인용되는 셰익스피어 원작 '햄릿'에 대한 색다른 해석도 제시된다. 성공한 법률학자이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해 조금씩 소설을 써왔던 지은이가 펼쳐내는 정신분석학과 추리 소설의 만남 결과물은 출간되자마자 각종 베스트셀러 차트 상위권 석권이라는 결과를 안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을 색다르게 해석해 세계적인 선풍을 불러일으킨 다빈치 코드처럼 책도 색다른 영역의 혼합을 통해 대중의 눈길을 잡고 있다. 한 세기 전을 무대로 벌어지는 인간의 천박한 야망과 추악한 본성이 결합한 결과는 현대의 읽는 이에게도 뭔가 씁쓸한 여운을 남겨준다.
연구 동반자였다가 앙숙지간이 된 프로이트와 융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미국 소설의 영화적 전개를 그대로 따르고 있으면서도 분명 새로운 이 책도 영화화 예정이다. 원작을 마구잡이로 난도질해 실망감을 안겨줬던 '다빈치 코드'와 다른 결과물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벌써 생긴다. 556쪽. 1만3천 원.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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