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패스트 푸드, 패스트 패션, 패스트 화장품 등이 유행하면서 옷이나 가구, 가전제품도 한번 구입했다가 마음에 안 들면 거리낌없이 버린다. 하지만 보듬고 고쳐 쓰는 미덕이 점차 퇴색하고 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손 때 묻은 제품에 애착을 느껴 고쳐쓰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각 제품의 수선의 달인들을 만나 '고쳐쓰기의 미덕'을 들었다.
▲가방수선 장준권 씨
"새 것처럼 고친 가방을 건네받고 기뻐하는 고객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지난 13일 설 대목을 맞아 장보는 사람들로 붐비는 대구 서문시장. 가방수선점을 운영하고 있는 장준권(66) 씨가 손님이 맡긴 가방을 수선하느라 재봉틀을 바쁘게 돌리고 있었다. 장 씨는 처음엔 재봉틀과 선풍기, 전자계산기 등을 수리했지만 수선 인구가 줄면서 10년 전부터 가방수선으로 전업했다.
장 씨가 하루 평균 수선하는 가방은 20~30개 정도. 지퍼가 고장나거나 안감을 교체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젊은 사람들은 주로 값비싼 명품가방의 수선을 맡긴다. 장 씨는 "명품가방을 수선하려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면서 "싸게 고쳐주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방수선이 보기에는 쉬운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힘든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라고 했다. 박음질도 세심하게 해야 되는 데다 불평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가방수선을 잘 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서울과 부산, 마산 등지에서도 찾아온다.
가방수선도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그는 "예전엔 학생 가방이 많았지만 요즘은 주5일제 영향으로 레저인구가 증가하면서 여행가방과 골프가방의 수선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장 씨는 "새 것만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지만 여전히 아끼고 고쳐쓰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가방 수선을 원하는 사람이 있는 한 가방수선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옷수선 박인수 씨
"아직까지는 소비보다는 절약이 더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서문시장에서 뛰어난 옷 수선 기술로 인정받고 있는 박인수(55) 씨는 18세 때부터 옷 수선을 시작했다. 그는 "정성들여 수선한 옷을 손님이 입고 나가실 때 기분이 정말 좋다."면서 "고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애프터서비스를 해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 옷 수선 일감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동네 세탁소와 대형마트에서도 옷 수선을 해주기 때문. 패스트 패션의 유행도 박 씨를 우울하게 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헌 옷을 고쳐입기보다 차라리 가격이 싼 중국산 옷을 사 입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씨의 가게를 찾는 주고객들은 대부분 40대 이상이다. "고쳐입으면 경제적으로 절약되죠. 자신만의 개성있는 옷으로 만들 수 있도 있습니다." 그는 수선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10년 전 박 씨가 처음으로 시도했던 청바지 수선은 의류회사들이 따라하기도 했다. "청바지가 헤어지면 보통 누볐지만 저는 새 천을 덧댔습니다. 고객들로부터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새로운 패션으로 유행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박 씨는 "가죽점퍼 하나를 고치는데 드는 비용은 4만 원에 불과하다."면서 "저렴한 가격에 새 옷처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도 되도록이면 고쳐입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모자수선 김연태 씨
대구시 중구 대신동에서 명성모자점을 운영하는 김연태(70) 씨는 20년 전부터 모자를 수선하고 있다. 맞춤모자 제작을 하던 중 손님들의 수선 요구가 많아 직접 나섰다. 김 씨는 1주일에 3, 4개의 모자를 수선한다.
"대구시내에서 모자를 수선해주는 가게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만큼 수선을 하려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자가 머리에 잘 맞지 않아 수선하는 고객들이 제일 많다. 또 유행이 바뀌면서 마음에 들지 않아 디자인을 변경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단골고객들이 많은 편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가 커서 모자가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김 씨의 가게는 인기다. 하지만 고객이 갈수록 주는 추세. 값싼 중국산 모자가 많아지면서 수선하는 가격이 사는 가격보다 비싸기 때문. 김 씨는 "중국산 모자는 웬만하면 수선을 하지 않는다."면서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뜯어보면 조잡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자 고쳐주고 잘 했다고 칭찬받을 때 일의 보람을 느낀다."면서 "아무 탈이 없는데도 수선비를 내지 않으려고 괜히 트집잡는 사람들도 많다."고 웃었다.
"나이 들어서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모자를 수선하려는 사람이 아직까지는 있기 때문입니다.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모자를 만들고 고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서문시장 수선·수리 고수들 많아
서문시장은 수선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시장 안에는 옷 수선점 28곳이 영업하고 있다. 섬유산업이 불황을 겪으면서 섬유인력이 잇따라 수선점을 창업했기 때문. 실력이 뛰어난 수선점이 많기 때문에 유행이 지난 옷이나 치수가 맞지 않는 의복을 저렴한 가격으로 새것처럼 고쳐 입을 수 있다. 양산과 우산의 수선 고민도 서문시장에서 해결할 수 있다. 수십 년째 양산을 수선했던 할아버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골목 안에 위치했지만 주변 상인들에게 물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대구에서 유일한 양산과 우산 수선점이라는 것이 상인들의 얘기다.
구두수선을 한다면 시내 곳곳에 위치한 구두수선점을 이용하면 된다. 대구시 중구 동성로 교보문고 뒤편 골목에 위치한 구두수선점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고 있어 인근에서 입소문이 났다. 시계를 고치고 싶다면 대구에서 유일한 시계수리 명장인 이희영 씨를 찾는 것이 좋다. 위치는 홈플러스 성서점 지하 2층.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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