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하(45·영주 봉현초교), 홍순천(36·여·김천초교), 한정숙(45·여·왜관 중앙초교) 교사와 김성호(경북도 교육청 초등교육과) 장학사로부터 미국, 호주의 대학 영재기관에서 1년 가량 연수 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영재교육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국비 또는 사비로 연수를 다녀온 이들은 우리 교육 현장에 복귀, 현지에서 배운 영재 프로그램들을 적용해보며 여러 가지를 격차를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영재 교육 현장을 둘러보고 받은 충격에서부터 우리나라 영재교육에 대한 반성, 보완할 점 등에 대해 아낌없는 고언을 전했다.
▶기름진 영재교육의 토양
"선진국의 영재 교육 현장은 문화 충격 자체였습니다."
2003~2004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즈대 제릭영재연구소에서 1년간 영재교육학 석사 과정을 밟은 한정숙 교사는 영재교육의 뜨거운 열기가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교사들부터 그랬다. 제릭영재연구소에는 호주와 뉴질랜드, 싱가폴 등 국내외 영재담당 교사들이 돈을 내고 집중 연수를 받는 곳.
"돈을 내고 연수를 받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호주 교사들 가운데는 계를 조직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연수에 참가하고 있을 정도로 영재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교장 이하 교사들이 단체로 연수에 참가하거나 행정실 직원까지 사비를 내 열정적으로 강의를 듣는 모습은 '충격'이었다고 했다. 한 교사는 "호주에서는 교사 채용 때도 영재교육 이수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가 정착돼 있고, 사립학교들은 영재교육 프로그램이 없으면 학부모들로부터 외면받는다고 생각할 정도"라고 했다.
미국 산타클라라대학에서 영재교육 연수를 받고 온 김성호 장학사는 "그쪽에서는 '내 고장의 영재는 우리의 세금(또는 기금)으로 키운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지방 기업에서도 영재아들에게 자기 회사 로고를 새긴 가방까지 선물해가며 교육을 돕고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해외 영재 교육의 특징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다양함(Diversity)'. 우리나라가 '수학 영재', '과학 영재'를 선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면, 영재 교육 선진국에서는 어느 분야든 특출한 재능이나 잠재력이 발견되면 영재로 인정한다는 것. 다문화, 다인종 등 우리와 사회적 배경이 다르고 교육이 대학 입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영향이기도 하다.
우동하 교사는 "미국에서는 학교 성적, 교사 추천서, 일정 이상 지능만 있으면 누구나 영재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수학, 과학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재능 탐색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다. 이는 대구의 각 교육청 영재교육원만 하더라도 최소 5대1 이상의 경쟁률을 보이는 것과는 다른 모습. 우 교사는 2003~2004년 미국 퍼듀대학 게리연구소에서 영재교육 교수자격 과정을 이수했는데, 이 곳만 하더라도 글짓기, 음악, 범죄 수사과학, 비행물리학, 곤충물리학 등 50여 가지에 달하는 다양한 영재교육 과목을 개설하고 있다. 일찍부터 관심 분야와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우 교사는 그러나 이러한 자유분방함 속에는 엄격함이 존재한다고 했다. "현지 학교에서 학생들을 맡아 6개월간 수업을 진행했는데요, 전교생 600명 중에 복도에서 소란스럽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체육수업을 나갈 때도, 이동 수업을 할 때도 모두가 줄을 서서 다니더군요. 교칙을 어기면 엄격한 벌칙이 주어집니다. 우리나라 선생님들에게 말했더니 아무도 믿지 못하더군요."
▶해외 영재 교육 이렇게 한다
이들 교사들은 하나 같이 외국 영재아들의 창의적인 사고력에 놀라움을 경험했다고 입을 모았다. 2004~2005년 미국 조지아대학 토랜스 연구소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홍순천 교사의 얘기가 흥미롭다. 현지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일이다. "암석 수업을 할 즈음이었습니다. 한 아이가 조그만 돌을 가져와 '예뻐서 기르기로 했다'며 애완동물이라고 자랑하더군요. 알고 보니 이름만 붙여준 게 아니라 자기가 여행갈 때는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등 돌을 돌보는 스케쥴까지 다 짜놨더군요."
한정숙 교사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놨다. "한 학기 동안 수행할 수학 과목 프로젝트를 발표할 때였습니다. 한 학생이 발표한 주제가 '숫자 5는 살아있는가' 이더군요. 처음엔 황당하기도 했지만 도대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가 놀랍기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영재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길러지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나라와는 어떻게 다를까. 먼저 시스템의 차이부터 들여다보자.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초등학교에 영재학급이 설치돼 있다. 우리처럼 방과후에 따로 영재수업을 받거나 주말에 교육청 영재교육원에 3시간 정도 모이는 것이 아니라 정규 교육 과정속에서 영재수업을 진행한다. 이른바 '전일제 영재교육'이다.
"예를 들어 한 학년이 5학급이면 그 중 한 학급은 영재반입니다. 수준이 또래보다 높습니다. 우리는 우열반 편성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미국에선 영재교육에 관한 한 우등교육에 대한 시비가 없더군요." 우 교사의 말이다.
영재학급 충원이 안 될 경우에는 순회 영재교사들이 지역 교육구를 돌아다니며 영재수업을 진행하거나, 3~5개 학교가 거점학교를 선정해 운영한다고 했다.
홍 교사는 영재전담 교사를 예로 들었다. "한 명의 영재전담 교사가 1학년생이 5학년이 될 때까지 계속 수업을 맡습니다. 그만큼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재능을 잘 알 수 있고 장기적인 안목의 교육도 가능하지요." 이들 영재전담 교사들은 특별한 재능이나 잠재력을 갖춘 아이들을 뽑는 역할도 수행한다. 우리 교육 현장에서는 영재 담당 교사가 일반 수업까지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꿈도 꿀수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영재교육의 방식과 대상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영재교육 선진국 경우 철저한 프로젝트 위주의 수업을 한다. 홍 교사가 4개월간 우주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일이다. "교사 역할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주는 일 정돕니다. 아이들은 자료를 읽고 관심 분야를 옮겨 적은 후에, 느낀 점, 준비 계획, 목표를 자신이 만들어 반드시 교사,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게 합니다. 오래 걸리지만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는 데 중요한 과정입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빨리 풀어내는 능력은 우리나라 학생이 단연 앞서지만 이런 창의적 문제해결력은 매우 부족한 실정일 수밖에 없다. 단기적 성과를 중시하는 우리 교육의 환경 탓이다.
미국 경우 과목에 따라 성취도가 뛰어난 학생은 고학년 수업을 들을 수 있고, 고교생 중에도 대학 AP과정을 이수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속진이 일반화돼 있다. 한 교사는 "특정 과목이 뛰어나다면 속진이나 월반도 가능하고, 같은 반 내에서도 소수의 영재에게는 한 단계 높은 과제물을 주는 등 특별 관리를 하고 있다. 우리는 거꾸로 부진아를 관리하는 데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 나라에서는 '소외된 영재', '미성취 영재'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영재교육 대상이 확대돼 있다. ADHD(주의력 결핍·과잉행동증후군) 아동이나 장애아동 가운데 일정 비율을 영재학급에 넣도록 제도화하고 있는 것. 우리가 이미 성공한 영재에만 주목하는 반면, 그들은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배울 점은
"귀국 후 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노령화 문제' 프로젝트 수업을 우리 영재원 아이들에게 시켜봤어요. 노령화에 따른 문제가 뭐가 있을까 생각나는대로 써보라고 했더니, 당장 '인터넷 이용해도 되나요?' 하고 묻더군요. 그쪽 아이들은 책부터 펼치는데요." 홍 교사는 '정답'에만 갇혀 있어서는 답을 찾기 힘든 문제를 결코 풀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교사들은 앞으로 우리나라 영재교육의 저변 확대가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외국에서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재능이라면 누구나 영재가 된다. 일찍부터 자신의 소질을 발견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돼 있고, 한 번 영재로 선발되면 자신이 원치 않는 한 탈락되는 경우가 드물다. 교과 지식 이외에도 도덕성, 리더십, 발표력, 시간관리 능력 등을 고루 갖춘 인재로 키운다는 것. 반면 우리 경우 '과학', '수학' 영재에 집중돼 있다.
영재학급이나 영재전담교사 등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해외 유수 영재프로그램을 배워온다하더라도 이런 장치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교육 최일선에 있는 교사들에 대한 영재교육 연수기회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우 교사는 "무엇보다 영재에 대한 교사들의 이해가 높아져야 한다."면서 "우리는 영재들을 뽑아놓고도 일반 학생들과 같은 방식의 수업을 하고 있다.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영재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홍 교사는 "경북의 지역 교육청만 해도 영재 담당 장학사조차 없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했다. 영재담당 교사 연수가 '수학', '과학' 정도에 한정돼 있다 보니 여타 과목 교사들은 영재교육에 관심이 있어도 연수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김 장학사는 "미국 영재 교육의 역사가 50년이라면 우리는 이제 겨우 5년(영재교육진흥법 시행령은 2002년 발효됐다.)"이라며 "외국에서 개발된 선진 영재 교육기법을 우리 교육 현장에 맞게 적용하는 시도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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