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인 지우를 키울 때는 첫 아이 때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값비싼 장난감이나 학습도구는 아이를 망칠 수 있는 생각에 잘 사 주지 않았다. 옷이나 신발 등도 남자라는 우월감을 갖지 않도록 누나가 입고 신던 것을 물려 입히고, 수저 놓기, 물컵 치우기 등 부엌일도 돕도록 하고, 하루에 수십 장식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신문 광고지를 모으도록 했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언어능력이 뛰어나고,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집중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사회성이 부족해 학교에서도 하기 싫은 것은 안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등 자기 주장이 너무 강했다.
하루는 유치원에 상담을 갔다가 아이가 늘 원장실의 '생각하는 의자'에서 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있어도 지루해서 듣기 싫으면 수업을 안 듣고 옆에 있는 놀이기구에서 논다고 했다. 그러다가 더 지루해지면 갑자기 "불이야", "소방차가 왔다." 하며 교실을 뛰어다니고, 그러면 다른 아이들까지 "앵~앵~"하며 우리 애를 따라 뛰어 수업이 엉망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수업 중에 아파트단지 놀이터로 사라진 적도 있고, 유치원에서 소풍을 갔다가 아이를 잃어버려 애먹은 적도 있다고 했다. 개미를 관찰하러, 비둘기를 보러 쫓아갔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학교에 가자마자 운동장으로 직행해 개미를 관찰하는 등 한참 놀다가 종이 울려도 교실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 강제로 끌고 들어가면 하루 종일 입 다물고 수업을 외면하고, 수업에 늦더라도 내버려두면 조금 있다가 제 스스로 들어와서 수업에 열심히 참여를 했다.
2학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수업을 듣는 태도가 남달랐다. 뭔가 하던 것을 계속하고 싶은데 그만 하라고 하던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라고 하면 입을 꾹 다물고 수업을 듣지 않았다. 선생님이 입을 다무는 이유를 물어도 묵묵부답. 야단을 듣고, 벌을 서고, 교무실 심지어 교장실에까지 불려가서, 엄마까지 여러 차례 호출당하기도 했다. 선생님들께 너무도 죄송하면서 '하필 내 아이가 저런가' 하고 울기도 많이 했다.
소아상담실에서 아이를 테스트해본 결과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극히 정상이며, 단지 틀에 메이는 것을 싫어하고, 새처럼 훨훨 자유로이 날고 싶어 하는 성향의 아이라는 말에 안심을 했다. 높은 지식 이해 수준에 비해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지만 고학년이 되면 저절로 나아질 거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상담 선생님은 아이가 다니는 학교 시스템이 맞지 않으니 전학을 하면 어떻겠냐고 권했다.
그러나 이를 거절하고 학교에 가서 상담 내용을 그대로 전한 뒤 협조를 구했다. 다행히 3학년 때 연륜이 있고 아량이 넓은 선생님을 만나게 돼 선생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아이는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한다는 사실도 점차 깨우치는 듯했다. 고학년 때는 회장도 하면서 학교 생활에 무리 없이 적응해 갔다.
첫째와 둘째 아이 모두 선행학습을 전혀 시키지 않아 둘째는 글자도 완전하게 익히지 못한 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유아 때부터 책을 읽을 줄은 알았지만, 글씨는 그림 그리듯 혼자 익힌 것이었다. 구구단도 2학년 때 학교에서 처음 접했다. 한 달에 한 번씩 학부모 참관수업을 했는데 우리 애는 선행학습을 안 한 덕분에 오히려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조별 학습 때도 자습서 등으로 미리 예습을 한 아이들은 교과서적인 모범답안만 말하지만 우리 아이는 상상력이 풍부한 대답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학습을 주도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주워온 돌이며 나무 조각이며 뭐든지 의미를 부여하고, 각종 장치를 만든다고 자기 것은 종이 한 장 버리지 못하게 해서 아이 방은 폐지와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4학년 때는 어두워져도 집에 안 오길래 찾아 나섰더니 책가방을 맨 채로 놀이터에서 나뭇가지 등을 주워모아 굴을 파고 움집을 짓고 길을 내 움집마을을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다른 아이들은 학원으로, 집으로 다 가고 없는데 온몸이 흙트성이가 돼 혼자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 글을 쓴 신정혜 씨의 아들 여지우 군은 한국과학영재학교를 거쳐 대통령 장학생으로 카이스트에 진학했습니다.
※ 학부모들의 자녀교육기 원고를 기다립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느낀 마음, 어려웠던 부분, 소중한 경험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전자우편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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