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권운지 作 '私信(사신)'

私信(사신)

권운지

내실의 쥐똥나무가 수상하다. 명확한 확증의 단서를 잡지 못한 채, 오늘 비로소 雨水(우수)를 보내고, 절제된 가지의 긴긴 침묵 위로 더디게 다가오는 謫所(적소)의 봄, 겹겹으로 에워싼 감시망을 뚫고, 무엇이 화분의 쥐똥나무를 설레이게 하였는지 오늘밤, 내가 지켜보고자 한다. 밤이 깊을수록 유혹의 손길은 끊임없고 홀로 버티는 파수꾼의 밤은 곤혹스럽다. 못 미더워, 완강한 철제대문의 문고리를, 거실의 이중창들을, 방으로 통하는 출구의 자물쇠를, 열두 번씩이나 부정해 보는 오늘밤도, 첫닭의 울음소리는 목전에 당도하고, 이 완벽한 차단의 담벼락을 뚫고 들어와 두드러진 잎눈마다 봉인의 밀서를 걸어 두고, 무엇이 이 방을 다녀간 것인가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쥐똥나무 눈떴다. 며칠 전 내린 봄비에 쥐똥나무가 눈을 떴다. 겨우내 말랐던 가지를 찢고 나오는 초록 눈. 그믐달 같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의 젖꼭지처럼 "두드러진 잎눈", 누가 호명하지 않아도 봄은 저절로 찾아온다. 그러니 시인이여, 어떻게 막으려 하시는가. 위리안치의 죄인처럼 철제대문의 문고리와 거실의 이중창, 내실의 방문을 아무리 꼭꼭 닫아 걸어놓아도 도둑처럼 스며드는 봄기운을 결코 체포할 수 없으리. 아무리 검은 교복으로 가두어놓아도 저절로 부푸는 사춘기의 젖가슴처럼 자연은 자연스럽게 들고나는 법. 그런데 북한에서는 쥐똥나무를 '검정알나무'라고 한다면서요? 이쪽의 쥐똥나무가 들었으면 섭섭한 맘 들겠네.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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