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 포럼] 디지털퍼머와 핑크머플러

"혹시, 직업이 예술가세요?" 대구에 내려오면 듣는 소리이다.

신학기가 되면 여학생들이 던지는 "교수님! 더 젊고 세련되게 변했어요" 라는 말은 대구를 떠난지 8년이 지난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나이에 듣는 짜릿한 소리이다. 또한 이 말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의 메시지로도 들린다.

이미지가 현실을 지배한다는 프랑스 사회학자 보드리 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원래 두꺼운 안경, 사시사철 특색없는 양복, 두툼한 가방 등 세련된 모습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21세기는 초감성시대이다. 개인의 톡톡 튀는 개성이 필요한 시대이다. 인간의 오장육부나 남녀의 성기 등 적나라한 소재까지 활용해 인종차별을 고발하고 박애주의에 호소하는 충격광고 등 우리 상식으로는 감히 받아들이기 힘든 베네통사의 마케팅전략이 먹혀 들어가는 세상이다.

필자는 가끔씩 대구 밖에서 본 대구의 본모습이 궁금했다. 대구에 대한 애정과 향수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일까? 사실 대구에서도 의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20년전부터 제기되어 왔으나 지금까지 늘 화두에만 머물고 있다.

이는 베네통의 경영전략과 같은 충격요법을 받아들이는 용기와 도전의식이 없이는 앞으로의 20년도 현재와 다를 바 없을 것임을 말해준다. 대구는 그동안 도처에서 '우리'라는 줄과 끈 속에 '우리의식'(we-feeling)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지금 대구는 Colorful DAEGU, 문화도시 표방 등 변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도처에서 웅성거리고 있다. 그러나 막상 튀는 변화가 있을 때에는 지극히 냉소적인 것이 대구의 독특한 문화이다. 특히 대구 사회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여론주도층이 변화에 대한 용기를 내지 않고 있다.

안락한 요람 속에 자리 잡은 여론주도층들은 변화는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라 여기며, 외부의 신선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면 여지없이 힘을 모아 그것을 배척하기 일쑤이다. 어떤 조직에서는 아직도 악인(惡人)이 양인(良人)을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이 여지없이 적용되고 있다.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능력있는 사람이나 외국의 신지식을 공부하고 온 새로운 인재들이 조직에 유입되면, 뒤에서 발목을 잡거나 조직 내 여론몰이를 통해 뒤통수를 때린다. 조직의 장(리더)도 정보채널이나 자신의 경영입지를 생각하며 이를 묵인하는 구태가 대구사회에서는 아직도 통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런 대구라는 요람 속에 있었다면 '디지털퍼머와 핑크머플러'를 하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할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주위의 냉소적인 시선 때문에 일회성의 해프닝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저 나이와 경륜에 어울리는 근엄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해진 학생들과 공감하지 못하는 아날로그 세대로 머물며 발렌타인데이에 와인 쵸콜렛을 받는다는 것은 기대도 못했을 것이다.

대구는 지금 변화의 노력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일은 타인에 대한 관심의 눈높이를 조금 낮춰주는 것이다. 한밤 중에 썬글라스를 끼고 다니건, 햇볕 쨍쨍한 날 검은 우산을 쓰고 다니건, 모두 '타인의 취향'으로 인정해주는 그런 배려와 '무관심의 애정'이 필요한 것이다.

Colorful DAEGU에 걸맞게 대구의 외모는 이제 달라졌다고 보자. 그러나 진정한 젊음이란 사무엘 울만의 '청춘'에서와 같이 장밋빛 붉은 입술과 나긋나긋한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와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불타오르는 정열과 깊은 샘의 신선함이다.

진정 대구가 젊어지려면 변화에 대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것도 소수의견(minority)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필요하다. 이제 대구는 자유롭고 유연한 도시이미지, 열정을 가진 도시이미지로 거듭나야한다.

대구는 예부터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문동(文童)의 고장이었다. 학동들이 글을 읽으면서 미래를 꿈꾸고 희망을 꿈꾸는 창의력이 넘치는 고장이었다. 따라서 대구가 변화하려면 여론주도층부터 변해야 한다.

이들이 앞장서서 신대구 정신운동, 신대구 르네상스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기술과 정신훈련이 필요하다. 벗어나라 대구여! 체면문화의 덫을 던져버리고 '디지털퍼머와 핑크머플러'를 수용할 수 있는 도시가 되라.

서정교(중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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