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소매점으로 가는 길, 차를 타고 가다 우회전을 하는 모퉁이에 승용차가 서 있다. 더러 있는 경우다. 그 차 때문에 다른 차들이 한 차선으로 줄을 지어 지나며 소통에 지장을 받고 있다.
외국에서 차를 몰아본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외국 역시 그런 차가 있을 터인데 굳이 운전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해봐야 뭐하겠는가 싶어서.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운전을 할 때, 그런 차가 있으면 차 안에 있는 운전자가 어떻게 생겼으며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강력한 충동에 늘 지고 만다.
만일 운전자가 없는 채 차만 세워져 있으면 아쉬운 가운데서도 무식하고 몽매한 어떤 얼굴형을 마음껏 상상하며 생김새는 그의 내면의 가치와 삶의 생김새를 반영하는 것이니 앞으로도 그런 채로 살아갈 것이라고 단정 지으며 지나쳐 갔다. 그렇게 살아왔다.
모퉁이에 서 있는 차에는 대개 운전자가 앉아 있다. 소매점 안에 잠깐 들어간 아내를 기다리는 나이 든 남자일 수 있다. 소매점 쪽으로 고개를 빼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면 쏘아보던 눈길이 수굿해진다. 차례 준비하러 나온 맏형이나 아버지, 미래 자신의 모습을 연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리따운 여성이 급한 전화를 받기 위해 멈춘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 역시 여동생이나 어머니, 연인을 연상하며 지나쳐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라디오라도 듣는지 뒤통수에 두 손을 받친 채 웃으면서 주변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앉아 있는 경우가 문제다. 아무리 용서해 주고 싶어도 친구에 사돈의 팔촌 그 누구와도 동일시가 되지 않는다. 같은 민족, 한 동네 사는 이웃이라는 인연을 들어서 어떻게든 이해해 주려고 애를 쓰다가 짧은 시간이라 결국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가버리게 된다. '몰라서 그런 거겠지'라는 의미다.
'대형이든 소형이든, 소매점이든 도축장이든, 그 앞을 우회전하는 길 모퉁이에 차를 세워서 다른 차량의 소통을 방해하는 건 불법, 위법, 탈법적인 행위이며 단속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운전면허시험에 이런 조항이 나온 것 같지는 않다. 상식이니까. '몰상식한 행동으로 타인에게 불편을 주지 맙시다.' 이런 상식 이하의 항목이 시험에 나올 리도 없다.
가령 열 살 남짓한 어린이가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인도의 모퉁이에 서서 팔을 벌리고 엠피쓰리를 듣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 아이를 비난하기보다는 상식을 가르쳐 주려 할 것이다. 문제는 어린이와 차가 다르다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어린이와 운전자가 갖추고 있을 것이라고 상정하는 상식도 다르다는 점이다.
부주의로 인하여, 어떤 결과의 발생을 미리 내다보지 못한 일을 법률에서는 '과실'이라고 한다. 자기의 행위에 의하여 일정한 결과가 생길 것을 인식하면서 그 행위를 하는 경우의 심리 상태를 '고의'라고 한다. 고의든 과실이든 그 결과가 타인의 법익을 심각하게 침해하게 되면 처벌을 받게 된다.
법률로는 그렇지만 일상에서는 상식의 부재내지는 결여로 인한 과실이 무죄를 주장하게 되는 근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당신이 소매점 앞 길 모퉁이에 차를 세워놓고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며 낄낄거리다가, 집 앞에서부터 밀리고 밀린 끝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람에 의해 차 밖으로 끌려나오게 되었다고 하자.
"도대체 이런 경우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소?" 하고 추궁을 받을 때 당신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댄 채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보이면서 "정말 몰라서 그랬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두 차로가 다 막히게 되고 뒤쪽에서 두 차의 운전자를 동시에 비난하는 불빛과 경적을 듬뿍 선사해서 각자의 차로 돌아가서 출발하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된다.
"몰라서 그랬다."는 건 무죄인지는 모르지만 스스로의 수준과 존재가치를 깎아내리는, 알고 보면 더 모욕적이고 자기비하적인 경우가 된다. 알면서 고치지 못하고 여전히 그렇게 한다면 오로지 자신밖에, 자신의 편익과 권리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정작 남의 눈에 보이는 자신이 어떨 것인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자신만 생각하는, 자신만 보는 사람들이 유념할 것은 곁에 있는, 뒤와 앞과 지하와 하늘에 있는 사람들 역시 자신만 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일어나는 사고를 불운이라거나 횡액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사필귀정? 아마 그럴 것이다.
성석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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