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포츠 인사이드)축구 열기 속 폭력의 그림자

축구 사랑인지 욕망의 분출구인지…

축구에 열광하는 유럽인들이 축구 열기 속에 스멀거리는 폭력의 어두운 그림자에 휩싸여 있다. 21일 유럽 챔피언스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릴의 경기 도중 맨유의 골에 대해 릴 선수들이 심판에 항의하자 릴의 홈 팬들이 흥분해 동조하는 등 경기장 분위기가 살벌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최근 이탈리아축구 세리에A 경기에서 시칠리아 라이벌인 카타니아와 팔레르모 팬들이 충돌, 경찰관 1명이 사망한 후 이탈리아축구협회는 야간 경기 금지, 보안조치를 제대로 취할 수 없는 경기장의 무관중 경기 등 대책을 시행 중이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선 아마추어 팀들간의 경기 도중 폭력 사태가 발생하자 일시적으로 경기 취소 조치가 취해졌다.

최근 축구경기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폭력 사고들은 1980년대의 가장 비극적인 폭력 사고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1985년 5월 벨기에 브뤼셀의 헤이젤경기장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컵대회 결승전 도중 리버풀(잉글랜드) 서포터스가 유벤투스(이탈리아) 서포터스에게 폭력을 휘두르자 이를 피하려는 관중들이 몰리며 경기장 콘크리트벽 일부가 허물어져 3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로부터 4년후인 1989년 영국 셰필드의 힐스버러경기장에선 리버풀과 노팅험 포레스트의 영국축구협회(FA)컵 준결승전 도중 흥분한 관중이 한꺼번에 몰리며 경기장 담벽이 무너져 95명이 압사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잉글랜드,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는 축구장 폭력에 대한 강력한 조치가 취해지고 있으나 크고 작은 폭력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20일 아르헨티나에서도 축구 팬들의 충돌이 빚어져 부상자가 생겨나는 등 열정적인 남미의 축구팬들도 심심찮게 축구에 관한 어두운 뉴스를 전하곤 한다.

축구는 유럽에서 주로 노동자계층의 삶의 뜨거운 분출구가 돼왔다. 축구장에 들어서면서 달아오르는 감정은 자신의 팀을 응원하기도 하지만 상대 팀과 팬들에 대해 적의로 가득 찬 노래와 거친 욕설로 폭력의 기운을 조성한다. 특히, 지역 라이벌간의 더비 매치가 벌어질 경우 뜨거운 열기에 비례해 폭력사고 발생 우려도 높은 실정인데 원정 팬들은 경기가 끝난 후 홈 서포터스들과 되도록 부딪히지 않고 조용히, 빨리 현장을 벗어나는 것이 불문율로 돼 있다.

'헤이젤 참사' 당시 유벤투스 선수로 참사 현장을 목격했던 미셸 플라티니는 20여년이 흐른 후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이 되어 다시 축구 폭력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플라티니 회장은 단호한 어조로 축구장에서 폭력을 근절할 것을 천명하고 있지만 폭력의 뿌리는 깊어보이기만 한다.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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