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예모의 영화 '황후화'는 금빛으로 물든 거대한 파멸의 드라마이자 파괴의 카니발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는 도드라진 인상으로 각인된다.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던 아내와 자신에게 칼을 들이댄 아들을 다시 식탁에 불러 모은 왕은 그들을 천천히 죽이고자 한다. 자신의 눈 앞에서 서서히 그렇게 죽어갈 것을 명령하는 왕은 한 나라의 통치자라기보다 아내를 응징하기에 급급한 남편의 모습에 더 가깝다. '황후화'를 서로에게 진력이 난 부부의 잔혹한 음모의 드라마로 보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화려한 이미지의 성찬으로 압도하지만 실상 이 작품은 부부라는 이름 아래 오래도록 자행되어온 폭력과 배신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황후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황제와 황후가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황손이 황제가 아닌 황후라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왕의 딸을 얻음으로써 일개 신하였던 남자가 왕이 되었다. 문제는 그들의 결혼이 철저히 전략적이었다는 데에 있다. 왕에게는 사랑했던 여자가 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도 있다. 황제와 황후의 관계는 정치적 동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까 '황후화'는 전략적 결합이었던 이 결혼이 종국에 가 닿을 파멸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영화는 '왜'라는 설명 없이 위장된 얼굴을 하고 서로에게 살의를 드러내는 황제와 황후 아니 두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황후는 황제 모르게 그의 뒤를 캐고 황제 역시 황후를 죽이기 위해 약에 독을 탄다. 영화가 전면에 드러내놓듯이 '황후화'의 긴장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오래된 서사적 관습에 의존하고 있다. 아내인 황후는 배다른 자식과 근친상간의 관계를 맺고 남편인 인 왕은 황후의 그런 모습에 분노해 아내를 독살하고자 한다. 그리스 고전 비극을 연상케하는 이야기는 그들의 복잡한 관계와 욕망을 입체적으로 조형하고 있다.
이 파국의 가정 드라마를 관통하는 파괴력의 원천은 아버지의 권위가 애초부터 부패했다는 데에 있다. 애정없는 결혼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왕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랑했던 여자의 일족마저 파멸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 뿐, 사랑도 진심도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왕에게 복수하는 심정으로 그의 아들과 성교를 나누는 황후는 이해될 수 있다. 왕이 건설한 완강한 왕국에 흠집을 내는 것은 그가 이룩한 최초의 질서인 가족 수형도를 무너뜨리는 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는 아들과 검투를 벌이는 황제의 모습에서도 발견된다. 마치 아들을 제압할 힘을 과시하듯 언어가 아닌 폭력으로 아들을 밀어 부치는 왕은 자신의 힘과 권위를 유일한 권능으로 알고 있는 아버지의 오류를 보여준다. 파멸을 목전에 둔 이 거대한 융숭의 공간은 법칙과 질서로 팽만한 상징계의 모습을 외설적으로 재현해주고 있다. 매시간 경구를 외치며 돌아다니는 왕실, 숨통을 조일 듯 복잡한 방식으로 구체화된 복식 체계는 아버지의 질서, 국가의 권위라는 것이 결국 억압이자 과잉임을 시각적으로 체감케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 파멸의 가정, 국가는 모든 아들들의 죽음으로 귀결되고 만다. 아버지의 언어가 과잉된 그 곳, 그곳은 결국 생산없이 증폭되는 파멸의 현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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