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 서양화가 변종곤

"세상 가장 재미있는 일이 그림…하루 종일 붙들고 논다"

서양화가 변종곤(59). 우리 나이로 올해 환갑을 바라보고 있는 그는 과거가 흥미로운 인물이다. 1978년 제1회 동아미술상 대상을 수상하면서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1981년 훌쩍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예술인의 특권(?)인 자유로움을 보장받지 못하던 당시 시대상황 때문이었다.

'창작의 자유'를 찾아 떠난 그곳에서 그는 모진 가난 속에서 화가의 삶을 시작했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떠난 그곳에선 당장 '생존'이 문제였다.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낯선 동양에서 온, 게다가 영어도 서투른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허드렛일뿐.

하지만 그 일이나마 하게 되면 화가로서의 삶을 중단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미술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돈을 벌었다 싶으면 브루클린의 작은 방에 쳐박혀 그림만 그렸다. 극도로 궁핍한 생활도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수십 블록을 걸어다니는 것은 예사였다. 그렇게 변종곤은 세계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살아남았다. 27년 간의 치열한 생존 게임에서 낙오자의 길을 면한 것이다.

그 결과 변종곤은 2005년 뉴욕 한국문화원 내 갤러리 코리아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었다. 전시회를 통해 미국의 평론가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뉴욕타임스에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작가는 한동안 이 기사를 작업실에 붙여 놓고 자랑하기도 했단다)

반기문 UN사무총장 취임식 때 초청을 받기도 했다. "바나나 하나 사먹을 돈도 없어 쓰러질 듯 했을때 아무도 나를 일으켜 줄 사람이 없었다."는 그로서는 상전벽해의 변화이다. "국가의 위상과 작가의 신분은 비례한다"는 말이 있듯 늦게나마 한국 문화 알리기에 나선 한국 정부의 노력이 고맙단다.

"한 명의 예술가가 국가 이미지 향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정도"라는 변종곤은 "많은 한국 작가들이 미국에서 주목받고 있다"며, 이 같은 한국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계속되길 기원했다.

작가 변종곤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그를 처음 본 사람은 늘 놀라기 마련이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가죽 점퍼를 입고 가죽 부츠를 신은 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만 59세의 나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은 표정 때문이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꾸준히 몸관리를 해온 덕분이다. 요즘도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빼먹지 않고 있다. "당신은 60세 때부터 생활이 펴질 거야. 그때를 준비하라."는 절친한 친구의 말이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버려진 폐품 위에 극사실주의 그림을 그려넣는 아상블라주(assemblage) 작품 세계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뉴욕 전시회에서 선보인 누드 여인을 안고 있는 부처 작품, 키스하는 신부와 수녀의 베네통 광고를 차용한 작품 등은 '센세이션 혹은 도발'을 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그림 작업이다. 나는 하루 종일 작품을 붙들고 논다."는 변종곤의 미술관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래서 그는 '유명한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또는 작품을 잘 팔기 위해서 작업하는 것은 예술가의 정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업실에 붙였다는 뉴욕타임스 기사도 '자신이 거기에 너무 묶이는 것 같다.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자 당장 떼버렸단다. 그는 그저 '가장 재미있는 작업을 평생 하는 것'이 꿈이다. 다른 화가와 별반 차이가 없다. 변종곤은 이런 점을 한국의 젊은 작가와도 나누고 싶어했다. "화가는 항상 화가 나 있어야 한다.", "화가는 미래를 위해 문화로 투쟁하고 혁명을 꿈꿔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도 함께.

"젊은이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일류 명품이 나온다."는 신념도 덧붙였다. 그래서 26일부터 3월 10일까지 갤러리분도(053-426-5615)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도 '젊은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한다.

자신을 "종곤아!"라며 부르는 친구들이 있는 고향 전시회가 가장 긴장된다는 작가 변종곤이 더욱 젊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회에는 그가 가난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책을 소재로 한 신작이 많이 소개될 예정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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