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배고픔도 잊게 해준 재미

먹을 것 입을 것이 귀하던 그 시절, 1970년대에 그나마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것이 바로 만화책이었다. 만화방이 없었더라면 그 귀한 동화책들과 만화책들을 어떻게 마음껏 볼 수 있었겠는가. 지금은 마흔 후반의 아줌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만화책을 즐겨본다. 조카들을 데리고 만화방을 들렀을 때, "어머님이 더 많이 빌려 가시네요."하고 만화방 주인이 하던 말에 짐짓 웃었던 적도 있었다.

이렇게 만화를 즐겨 보게 된 내력은 순전히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께선 박봉의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만화 보는 것을 허락하셨다. 다만 밤늦게까지 엎드린 채 보고 있으면 코가 나빠진다며 일찍 자라고 채근하시곤 했다. "빨리들 자거라, 책은 문밖에 내어 두고." 우리들이 잠든 후엔 아버지와 어머니가 밤이 새도록 만화책을 보셨다.

만화책을 자주 빌려 볼 수 있을 만큼 넉넉하지 못했던 살림이었기에 아버지께서는 학교용 도서들을 가끔 우리에게 빌려다주셨다. 우리는 책에 때를 묻히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읽은 후 돌려 드렸고 때로는 아버지께서 대구에 다녀오시는 길에 만화책을 한 묶음 사서 주시기도 하였다. 그러면 우리 형제들은 그 만화책이 너덜너덜 책장이 떨어져나갈 때까지 보고 또 보곤 하였다.

우리들이 즐겨보던 만화가들의 작품 속에서 나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고 주인공이 되어 울고 웃고, 또 기쁨과 슬픔을 겪는 어린 소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엔 불량만화 같은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요사이의 주인공들은 화려하거나 국적을 알 수 없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그 때는 만화 속의 주인공들도 소박하고 귀엽고 마음씨가 착하기 그지없었다.

스토리가 방대하며 잘 짜인 일본 만화를 볼 때마다 우리나라엔 왜 이만한 만화들이 나오지 못하는가를 안타까워했다. 좋은 작가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만화 대본소들이 더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만화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만화가들도 신바람이 나서 좋은 작품들을 구상하지 않겠는가.

박미야(대구시 달서구 도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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