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행복한 책읽기

지난 해 여름 운동을 해볼 작정으로 자전거를 샀다. 운동을 하는 기분도 좋았지만 자전거를 타다보면 내가 바람을 만들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질 때도 있다. 한 시간여를 달리다가 턱을 보지 못하고 넘어져 다리를 접쳤다.

자전거는 사무실 통로에서 내 다리가 낫기를 기다리다 사무실 안으로 옮겨졌고, 다시 사무실 마당으로, 결국에는 차고였던 창고로 옮겨졌다.

며칠이 지나 다리는 말짱하게 나았지만 바쁜 스케쥴에 자전거를 잊고 있었다. 어느날 창고에 들어갔다가 자전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웬 자전거가 여기에?" 짧은 순간이었지만 참 민망하고 한심해졌다. 가끔 머릿속에 지우개가 들어있는 것처럼 하얘질 때가 있다.

며칠 전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의 정기모임이 있었다. 거기서 내 이야기를 꺼냈더니 누군가가 '디지털 치매'라고 했다. 인터넷, 전자계산기, 휴대폰에 내장된 전화번호부 게다가 노래방 기기의 노래가사까지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너무나 당연히 나타나는 증상이며, 그 궁극적인 원인에는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이유도 있다는 것이다.

내 머릿속 지우개로 시작된 그날의 대화는 도서 구매율이 떨어지고 있고, 읽히는 책과 읽히지 않는 책이란 딱 두 부류의 책만 존재하는 이즈음의 출판시장에 대한 걱정, 기획출판의 어려움, 심지어 출판인력난의 어려움까지 이어졌다.

하나같이 진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답이 시원하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니 난상토론 비슷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모임의 한 후배는 이즈음 고전을 읽기 시작했단다. 킬링타임용의 가벼운 책읽기의 거부이기도 하고, 비교적 인내심이 동반되어야 하는 고전읽기를 통해 복잡다단한 삶의 패턴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 같다고 한다.

영상시대가 도래하면서 정보를 얻어내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가까이에서 들어보면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도 말한다. 나 또한 예외일수는 없으나 그것은 삶을 배우고 노력하려는 시간이 없다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자아를 잃어가고 있는 우리 현실의 반영이다. 책이라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매체 속에 지혜가 있고 그 지혜를 적극적으로 찾아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피드 시대에 발맞추어 슬금슬금 자기만족에 머무는 책읽기를 추구하지 말자. 어느 종교신문에서 33권의 책읽기운동을 시작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제 우리도 스스로 책읽기 운동을 시작하자. 그것이 오늘 우리가 고민하는 책에 대한 르네상스의 시작이다.

나윤희(홍익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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