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현대정신의학 잔혹사

현대정신의학 잔혹사/앤드류 스컬 지음/전대호 옮김/모티브북 펴냄

지난달 21일 3집 앨범 발표를 앞둔 가수 유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유니 자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10일에는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로 스타덤에 오른 탤런트 정다빈이 서울 삼성동 모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 결과, 타살 흔적이 없어 정다빈의 죽음은 자살로 잠정 결론이 난 상태.

잇따른 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으로 '베르테르 효과'(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이나 영향력 있는 인물이 자살하거나 죽었을 경우 그 사람과 동일시해서 자살 시도를 따라하는 현상)에 대한 우려감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인들은 '우울증 경계령'이 내려진 시대를 살고 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하기 때문. 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자살 확률은 일반인에 비해 41배나 높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2020년 우울증이 모든 연령에서 나타나는 질환 중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의학은 우울증의 원인을 유전적 요인, 정신적 요인, 호르몬의 영향으로 파악하고 약물, 정신, 인지, 대인 치료법으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초에는 세균 감염에 의해 정신질환이 발병한다는 판단 아래 세균을 제거하기 위한 시술이 정신질환 치료에 동원됐다. 이 책은 인간 정신을 의학의 실습 도구로 삼은 의사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미국 뉴저지주 트렌턴 주립병원 원장 헨리 코튼은 정신질환의 원인이 신체 부위의 국소 감염이며 국소 감염을 일으키는 국소패혈증의 제거만이 정신질환의 유일한 치료법이라고 확신했다.

독일 유학파 헨리 코튼은 X선 촬영, 현미경 관찰, 세균 배양 등 당시 최신 의학기법을 동원, 환자들 몸에 숨어 있는 감염을 찾아냈다. 그리고 과감하게 감염 부위를 제거했다. 환자들의 인권이나 40%에 가까운 사망률은 그의 행로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에게는 과학의 힘으로 '원인'을 밝혀내고 완전 치유가 가능한 새 치료법을 발견했다는 신념만이 중요했다.

코튼은 1919~1920년 사이 4천201장의 X선 사진을 찍고 4천392개의 치아를 뽑았으며 542건의 편도를 절제했다. 또 1920~1921년에는 총 6천472개의 발치, 1918~1925년에는 2천186회의 개복 수술을 시행했다. 남녀를 막론하고 치아 뽑기, 편도 절제를 시작으로 배를 갈라 쓸개, 결장, 자궁경부, 좌우 난소와 난관, 자궁, 정낭, 정소, 갑상샘 등을 적출했으며 백신, 혈청 치료가 강제로 행해졌다. 살아 있는 시체로 취급받던 환자들의 강력한 저항은 무시됐다.

그를 비난하는 동료 의사들도 많았지만 미국 정신의학계의 거두 아돌프 마이어 교수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코튼은 더욱 공격적인 행로를 걷게 됐다. 코튼과 뜻을 같이한 영국 의사 토머스 시버스 그레이브스는 그를 영국 의학·심리학회 연례 모임에 초청했고 코튼이 X선 사진과 함께 높은 회복률 수치를 제시하자 영국 의사들은 열렬한 찬사까지 보냈다.

이에 대해 프린스턴 대학 교수이며 트렌턴 병원 이사인 조지프 레이크로프트는 코튼의 작업을 검토해 달라고 마이어 교수에게 요청했고 때마침 뉴저지주 입법부에 트렌턴 병원에서 일어나는 비극상을 증언하는 일도 일어났다. 급기야 마이어 교수는 존스홉킨스 대학 핍스 클리닉 연구원인 필리스 그린에이커에게 코튼 작업 검토 작업을 맡겼다. 그린에이커는 임상기록, 병력, 진단, 치료, 결과를 치밀하게 조사한 뒤 코튼의 치료를 많이 받은 환자일 수록 사망확률이 높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후 코튼과 트렌턴 병원 이사회는 보고서가 세상에 발표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그린에이커 입 막기에 급급했다. 코튼의 잔혹한 치료법은 1930년 그가 명예 원장 겸 연구 책임자로 병원 일선에서 물러난 뒤 1933년 사망하면서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544쪽, 2만1천 원.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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