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감동 없는 폭로劇은 끝내라

마을 수박밭에서 수박을 훔친 소년 세 명이 법정에 서게 됐다. 마침 담당 판사님은 엄격하기로 소문이 난 분이라 아이들은 중벌을 내릴까봐 잔뜩 겁을 먹고 서 있었다. 이윽고 판사님이 법정 안을 둘러보며 큰소리로 물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어릴 때 수박서리를 한 번도 안 해본 분은 손 들어보세요." 그러자 옆에 앉은 배석판사, 교도관들, 방청객 그리고 애들을 제소한 수박밭 주인까지 모두 책상과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린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법정을 둘러본 판사님이 선고했다. "원고 청구를 기각합니다."

이명박 캠프와 박근혜 캠프 간의 검증 논란 제1막이 폭로자의 '반성문 쓰기'로 막을 내리면서 떠올려본 수박서리 재판 이야기다. 요란스레 들고나와 터뜨린 罪狀(죄상)들이 마치 아이들 수박서리처럼 '정치판에 굴러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한두 건은 저지르게 돼있는' 수준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자 거꾸로 터트린 쪽이 폭로를 반성하고 사과한다며 엎드려 버렸다.

대선 재판관 격인 유권자 국민들 눈에는 시장바닥 각설이 한마당 구경하고 난 듯한 기분이 됐다. 제2막 '옛 비서의 폭로'극도 왠지 관람 기분은 찜찜하기가 1막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막이 오르기 무섭게 서로 劇本(극본)이 거짓말이라고 우기는 기 싸움부터 터지니 제대로 된 정치劇(극)의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엔 정말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아야 먹고 살 길이 열리는 절박한 처지의 국민들로서는 앞으로 계속 터져나올 3막, 4막을 즐기기는커녕, 검증이 제대로 된 검증인지를 검증해 줘야 하는 수고까지 해야 할 판이다.

하기야 김대업 정치극에 속아 150조의 빚만 떠안은 관객(국민)들로서는 어릴 적 닭서리 같은 자질구레한 정치판의 낡은 흠집 검증보다는 집권 후의 도덕성과 미래지향적 정치 역량 등을 더 깊이 살피는 수고를 마다할 수도 없다.

이미 우리는 노 정권을 뽑을 때 노랑마후라, 현란한 선거 이벤트에 취해 숨은 허상 내지는 거짓을 뚫어보지 못한 검증 소홀의 학습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래서 검증은 목적과 방법이 추하지 않고 과정에 거짓이 없다면 해서 나쁠 것 없다.

그러나 '저잣(시장)거리에 호랑이가 나왔다'는 허황된 거짓말도 세 번을 반복하면 정말 市場(시장)에 호랑이가 나온 걸로 믿게 되는 속성을 악용하는 거짓 정치극의 함정에 또다시 빠져서도 안 된다.

앞으로 대선까지 어느 쪽을 겨냥하든 제3막, 제4막의 정치 폭로극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거짓말의 방법에는 팔백예순아홉 가지가 있다고 하지만 어설픈 폭로극은 양날의 칼날처럼 서로를 다치게 한다.

4년 전 한나라당을 벤 김대업의 칼날이 이번엔 우리당에 불신의 상처를 주고 있는 이치와 같다. 단 한 마리의 파리가 한 그릇의 죽을 몽땅 다 못 먹게 만들 수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번 한나라당의 정치 폭로극 1막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이 그야말로 빠진 파리만 건저져 죽고 죽그릇은 그대로인 笑劇(소극)으로 끝났다. 관객의 박수가 나올 리 없다. 아마 2막도 극본을 살펴 짐작건대 닭서리 이야기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할 것 같다. 차떼기당 소리 들었던 전과를 가진 黨(당)의 10년 전 선거판 푼돈(회유, 거짓증언값) 시비쯤은 수박서리 수준을 넘기 어렵다. 관객들에게 표심을 뒤바꿀 만큼의 감동은 주기 힘든 것이다. 폭로 후에도 2% 안팎에 그친 지지도 변화가 무감동을 증명하고 있다.

폭로극으로 과거나 캐고 갈등과 분열을 부추길 요량이면 굳이 그 분야에선 더 잘난 지금 정권을 바꿀 필요가 뭐 있겠는가.

지금 국민은 폭로 솜씨가 아니라 당의 화합 역량과 집권 능력을 검증하고 있다. 태산을 울릴 만한 감동을 못 줄 바엔 쥐 한 마리 잡고 끝나는 어설픈 폭로 정치극은 2막으로 끝내라.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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