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태흥의 어린왕자와 떠난 히말라야] ⑦야크들의 목초지 '카르카'

마낭을 떠나 야크 카르카(Yak Kharka, 3,970m)로 가는 길은 내내 오르막길이다. 그다지 가파르진 않았지만 끝없이 이어진 산기슭 오르막은 이틀간의 휴식을 무색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 속에 어린 시절 달아나고 싶었던 가파른 언덕에 있던 고향집의 기억이 떠오른다.

산의 중턱을 깎아 만든 산복도로의 비탈진 언덕에 자리한 동네는 늘 물이 귀했다. 소년은 늘 공동 수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고 누나들은 머리에 동이를 이고 물을 길어 날라야 했다. 그러다 추운 겨울, 그 수도마저 얼어붙어 물이 나오지 않는 날이면 학교 뒷산까지 30분을 걸어올라 물을 긷곤 했다. 소리를 내며 우는 전기 줄에 매달린 연이 바람에 말라 앙상한 연살만이 서럽던 어느 봄, 누나들마저 일을 하러 떠났을 때, 그 가파른 언덕길은 소년에게 달아나고 싶은 공간이었다. 아무도 없는 고향집의 그 언덕길처럼 야크 카르카로 가는 언덕길은 소년의 가난한 기억처럼 마냥 적막하고 쓸쓸하다.

한국인 여자 여행객 둘을 만났다. 며칠 전 체크포스트 관리인이 말한 한국인 여행객들이다. 트fp킹을 왔다가 일행 중 두 사람이 고소증을 앓아 먼저 내려가고 자신들도 몸이 좋지 않아 일주를 포기하고 오던 길을 내려가는 중이다. 서른 셋. 두 처녀는 같은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히말라야로 들어왔다.

"일주일 내내 아버지 생각만 했어요."

무능하지만 권위적인 아버지 탓에 한 처녀는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 했다. 가족들을 위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할인점에서 휴지 판촉을 하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하게 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다고 했다.

"이제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낳아주신 것보다 더 큰 은혜도 없으니까요"

그녀는 땀을 훔치며 말한다.

사실 안나푸르나의 아름다움을 보기란 쉽다. 하지만 안나푸르나의 아름다움을 알기란 쉽지 않다. 가끔씩 구름사이로 얼굴을 언뜻 내보이는 설봉들과 아득한 낭떠러지를 끼고 흐르는 마르상디 강은 너무나 아름답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잊고 있었던 것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무작정 걷는 동안 그저 가슴을 열고 닫는 숨소리만이 벗이 될 때, 생각은 깊어진다. 그러다 문득 화인(火印)처럼 가슴에 각인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용서가 되고 눈물이 된다. 이보다 더한 아름다움이 어디 있으랴. 여기에 안나푸르나가 있다.

가이드의 채근에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시 언덕길을 오른다. 어쩌면 이 가파름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 다윗 왕의 반지에 새겨 넣은 솔로몬의 지혜의 글귀가 새삼 새롭다. 세상에 의미 없는 존재가 어디 있으랴.

야크의 목초지라는 뜻을 지닌 야크 카르카가 다가 왔음인지 야크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야크는 고산지대의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야크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제공한다. 심지어 이곳 사람들이 말린 배설물조차 연료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야크가 얼마나 소중한 식구인지 알만하다. 야크는 털북숭이의 거대한 몸과는 달리 양순하기 그지없다. 야크 떼는 느림의 미덕을 일깨우는 듯하다.

길옆 찻집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찻집은 비수기인 탓에 젊은 아낙이 혼자 운영을 하고 있다. 콜라는 가이드와 포터의 몫이고 짜이는 여행자 몫이다. 깊은 산중의 콜라 값이 비싼 것은 노동의 수고 때문이지만 오는 내내 거의 모든 찻집에 붙은 콜라 홍보문구는 새삼 자본의 위력을 실감하게 만든다. 현지인들에게 콜라는 익숙한 음료가 된지 오래고 가이드나 포터들에게도 이미 그것은 문화의 척도가 되어버렸다.

마당 한 구석에 이채로운 화분이 놓여 있다. 한국 컵라면의 용기를 이용한 화분이다. 문명의 이기조차도 이곳에서는 이렇게 이름을 바꾸고 몸을 바꾼다.

말을 탄 아낙네가 아이와 함께 찻집에 들어선다. 검게 그을린 얼굴이지만 머리에 두건을 쓴 그녀의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좁고 험한 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타고 다니는 당당함이다. 언덕 저편은 온통 꽃이다. 해발 4000m가 넘는 고지에 핀 분홍과 보라색의 꽃들은 땅바닥에 꽃그늘을 낮게 드리우고 있다. 꽃들마저 이곳의 모습을 닮은 셈이다. 경이롭고 고맙다. 존재란 슬픈 것이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오후 2시. 야크 카르카에 도착한다. 이 마을은 곳곳에 호텔을 짓느라 어지럽다. 다가올 트레킹 성수기를 준비하는 분주함이 활기차 보이긴 했지만 왠지 안나푸르나가 온통 관광지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롯지는 문을 닫았고 그나마 열린 곳조차도 먼지가 날아들어 엉망이라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롯지를 찾기로 한다. 깎아지른 벼랑을 따라난 길을 걷다보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가벼운 두통이거니 생각했지만 걸을수록 눈앞이 캄캄하다. 고소증세가 찾아온 것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지만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포터, 쪼루를 보며 억지로 걷는다. 숙소가 보이는 곳까지 왔을 때는 이미 기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 만난 이들처럼 일주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간판조차도 없는 롯지는 젊은 아이들과 청년이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은 인근 공사장에서 돌을 깨는 일을 하는데 카투만두 인근서 왔다. 식당 한편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아이들에게서 카투만두의 거리에 나앉아 본드를 마시던 이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저리다.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웠지만 쉽게 잠들지 못한다. 고소 증세로 안나푸르나를 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초초함 때문이다. 어리석지만 이곳으로 출발하면서 살아오면서 의식적이든 아니든 세상에 저질렀던 잘못들을 속죄하고 싶었다. 그 잘못들 가운데는 세상을 구원하겠노라고 소리치던 아들을 기다리다 마음을 걸어 닫은 병에 걸린 어머니가 있었고, 먹고 사는 문제로 그 젊은 날의 이념조차도 팔아버린 슬픈 영혼이 있었다. 넘지 못한다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면, 돌아가야 한다면... 밤새 비닐 창을 두드리던 바람은 겨우 잦아들었지만 새벽이 되어서도 어둠은 쉽게 걷히질 않는다.

밤새 뜬 눈으로 새운 아침, 아이들은 새벽같이 일을 나갔고 청년은 아침준비에 분주하다. 오늘 목적지가 해발 4800m의 하이캠프라는 말에 벌써 주눅이 든다.

배낭을 매면서 "여여(如如)하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있는 그대로 자유롭다."라는 뜻이다. 그 뜻의 깊이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야말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있는 그대로 자유로운 하루가 되기를 비는 마음이 여행자의 아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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