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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춘향의 志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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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에 배약하고 二三其德(이삼기덕)한다면 鬼誅天殃(귀주천앙)할 것이니…' '春香傳(춘향전)'에 나오는 대목으로 이 도령이 춘향과 백년해로를 약속하면서 장모가 될 월매에게 써준 不忘記(불망기)다. 어떤 일이 있어도 춘향을 버리지 않겠다는 일종의 서약서였던 셈이다. 만약 약속을 어기고 어랬다 저랬다 하면 귀신의 저주와 하늘의 災殃(재앙)을 감수하겠다는 이몽룡의 이 다짐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말은 아니었다.

▲이 불망기도 따지고 보면 당시의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낸 경우가 아닐는지. 옛날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기와 信義(신의)를 그만큼 중시했던 것 같다. 심지어 절대 권력을 누리던 임금까지도 자기중심적으로 아침의 말을 저녁에 바꾸지는 못했다. 지성인인 선비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一口二言 二父之子(일구이언 이부지자)'라는 말이 이르듯이 어떤 계층의 누구나 한 번 한 말 어기기를 금기시하고 모멸하기도 했다.

▲세조 때 斥佛(척불)을 주장했던 洪逸童(홍일동)이 임금으로부터 철회를 강요받았다. 그는 "죽는 게 마땅하면 죽고, 사는 게 마땅하면 사는 것인데, 어찌 한 입을 가지고 두 말을 하겠으며, 또 마음을 바꾸겠습니까"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 세태는 약속을 죽 먹듯이 어기고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딴청 부리거나 상황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3·1절을 앞두고 日帝(일제) 강점기 지식인들이 '춘향전'을 통해 대중의 抗日(항일)민족의식을 일깨웠다는 연구가 나왔다. 연세대 설성경 교수는 논문 '춘향전과 항일민족운동'에서 "일제 강점기 지식인들이 춘향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 발간, 춘향 祠堂(사당) 건립,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항일민족정신을 고취했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특히 1912년부터 23년간 나온 27종의 춘향전이 민중계몽에 기여했다는 주장이다.

▲설 교수는 신사참배와 創氏改名(창씨개명)을 거부한 김영랑도 시 '춘향'에서 '박팽년이 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며 志操(지조)와 역사의식을 떠올렸다고도 했다. 당시 지식인들이 지조와 剛斷(강단) 있는 투사 기질을 겸비한 춘향을 통해 민족의식을 부각시킨 점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3·1절이 다시 내일로 다가왔다. 오늘의 지성인들이 이 시대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를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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