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응급실 한켠에 반듯이 누워 있는 남편 곁으로 의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정신을 잃은 남편에게 전기충격이 가해지면서 '삐'라는 기계음이 귀를 때렸습니다. 맥박기에는 빨간 전기줄이 달려 있었고, 그의 몸 위로 분주한 손놀림이 이어졌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들의 경고가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한 때 내 작은 손을 살며시 잡아주던 그의 따뜻한 손이 싸늘한 공기보다 더 차갑게 식어갈 것 같은 두려움. 이 낯선 광경이 제발 꿈이기를 빌고 또 빌었지요. 창백한 그의 얼굴, 작은 맥박은 채 3분도 이어지지 않고 죽음을 알려왔습니다. 제 심장도 멋는 듯 했지요. 그리고 수십 번의 전기충격, 그는 기적같이 살아났습니다. 그게 5개월 전이지요.
내 남편 황준구(43) 씨. 꺼진 횃불을 다시 지피듯 살아난 남편은 살아났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홀로 삶과 죽음 속에서 사투를 벌였던 흔적들이 곳곳에 역력하게 남아있지요. 하얀 속살이 빨갛게 타 들어가는 전기충격의 상처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은 그를 저 또한 놓아줄 수 없습니다. 그 날 이후, 우리 가족은 그를 믿고, 그에게 또 찾아올 다른 기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벌써 16년 전이네요. 단과대학 학생회장이었던 남편을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린 것이 말이예요. 그는 당당했고, 무슨 일이든 할 것 같았고, 어떤 일이든 겁내지 않았습니다. 결혼한 뒤에도 단 한번도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지요. 든든한 남편, 멋진 아빠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그는 "많은 이들이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며 정당일을 했고, 시민단체에서도 일을 했습니다.
힘겨운 생활이었지만 얼굴 한번 찌푸린 적 없는 성실한 그 사람, 제 때 월급 받지 못해도 눈붙일 틈도 없이 일했고 그 속에서 보람을 찾은 남편. 딸 민희(15)와 아들 민호(12·이상 가명)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턴 "남을 도와야 진정한 삶을 이룰 수 있다."며 봉사 활동에도 뛰어들었지요. 해마다 소록도를 찾았고 장애인들의 손과 발이 돼 주었지요. 시각장애인과 나들이를 나갔고 뮤지컬을 보러 갔습니다. 아이들도 그들의 손과 발, 벗이 되어 행복을 만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너무 많은 일을 찾았던 그에게 '급성심근경색'이라는 병이 찾아왔습니다. 한차례 고비를 넘긴 남편은 이제 중환자실에 있지요. 친구에게 보증을 잘못 서 큰돈을 날렸지만 "언젠가는 좋은 일로 찾아올 것"이라고 위로했던 그. 우리의 재산 전부인 2천만 원을 병원비로 모두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 크게 화를 낼 테지요. 이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식물인간이지만 늘 저에게 "믿고 살아달라."는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27일 오전 대구 수성구 신매동 성삼병원 중환자실에서 만난 태진영(43·여) 씨는 구깃구깃한 종이 한장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이 저 몰래 대학을 다니려고 했나봐요. 사회복지학과 에 합격했다는 통지서가 이제서야 날라왔네요." 황준구 씨는 지난해 9월 쓰러지기 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봉사를 하고 싶다며 사회복지학과를 지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전세금 2천만 원이 전부인 집안 살림을 생각해 말을 안 했던 것 같아요." 황 씨는 오늘도 죽음의 문턱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겨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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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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