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천 호국원 '16인 합동안장식' 특별한 주목 받아

"조국과 민족의 안녕을 위해 내 한 몸 초개와 같이 버린 임의 영전에 삼가 머리를 숙입니다. 부디 평안히 영면 하십시오."

28일 오전 11시, 영천 호국원에는 육군3사관학교 군악대의 진혼곡이 잔잔히 울려 퍼졌다.

이날 6·25전쟁과 월남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16인의 신위를 모시는 합동안장식은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6·25 전쟁에서 맹활약한 학도경찰대 청룡부대장이었던 김시제(경위) 용사의 안장식이 열린 때문.

당시 전우로 이날 안장식에 참석한 팔순의 노병들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김시제 부대장은 6·25가 발발하자 당시 중·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이들을 인솔해 낙동강 전투와 서울수복 후 경기도 가평전투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전쟁 발발 5개월만인 50년 11월18일 경기도 포천 이동전투에서 25살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0년 당시 매일신문(10월 3일자)에는 이들의 활약상이 잘 나타나 있다.

'용감무쌍한 국군의 뒤를 따라 사상 유래 없는 학도경찰대는 정열의 애국청년 김시제 부대장 인솔하에 대원 00명이 분투했으며....

김시제 부대장이 이끄는 학도경찰대는 9월25일 새벽을 기하여 현풍지방을 완전탈환하기 위하여 소수의 병력을 인솔하야 사촌지구 300고지를 결사수호 하였다.'

당일 매일신문에 '한국 학도의 의기 연합군이 감격찬양'이란 제하로 실린 종군기사 내용이다.

이들은 당시 미·영 연합군과 함께 논공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낙동강 너머 고령쪽에서 밀고오는 인민군과 대치, 대구를 사수하는데 큰 힘을 보탰다.

본지는 또 어린 학도경찰병들을 보고 당시 연합군들은 '아기경찰'이라고 놀려대기도 했으나 이들의 용감무쌍한 활약에 '강한소년'이라고 애칭을 바꾸기도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했다.

학도경찰대 청룡대대 동지회 구본탁(77) 회장은 "우리들의 활약상이 자주 신문지상에 소개됐다."면서 "김 부대장은 '학도경찰대 김시제 부대장 분투'라는 내용이 담긴 매일신문을 스크랩해 병사들과 열람하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영천·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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