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 봄나물은 계절의 축복이었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온 알싸하고 향긋한 향의 봄나물이 채 모양도 갖추기 전에 너나 할 것없이 들로 산으로 다니며 한 소쿠리씩 캐곤 했다. 요즘에야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사시사철 봄나물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계절을 알리는 전령사로 겨우내 감춰두었던 생명력을 과시하는 봄나물은 역시 직접 뜯고 캐야 제맛이다. 3월 초순이면 들판 어디서나 냉이, 쑥을 만날 수 있다. 주말에 나들이 삼아 가족들과 함께 봄나물을 캐러 가보자. 이왕이면 너무 멀지 않고 조금 한적한 곳이면 좋겠다. 잊혀진 도로, 즉 새 노선이 뚫리면서 제 역할을 잊고 조용히 여생(?)을 즐기는 도로들을 찾아나서 보자.
◇ 옛 25번 국도
대구 북구 칠곡을 지나면서 5, 25번 국도가 합류된 곳을 따라 한참 달리다보면 가산에서 두 도로가 나뉜다. 선산쪽, 즉 25번 국도를 따라가면 4차로로 시원스레 열린 새 길을 만날 수 있다. 새 길에 올라서자마자 오른편을 살펴보면 송학리로 빠져나가는 출구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25번 국도 옛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도리사, 일선교까지 달릴 수 있다. 워낙 다니는 차가 적기 때문에 도로 옆 어디에 차를 세워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 22일, 날씨는 봄기운이 완연했지만 아직 들판에는 푸른 기운이 보이지 않았다. 겨울을 보내며 바짝 마른 풀들이 들이며 산을 가득 덮고 있었고, 양지바른 곳곳에 삐죽이 때이른 잡초들이 여린 잎을 내밀고 있었다. '역시 아직은 이른 것일까?'하는 마음에 돌아서려다 혹시나 싶어 마른 풀들을 들춰보았다. 순간 '아!'하는 가벼운 탄성이 나왔다.
들판 어디나 할 것 없이 마른 풀들 아래로 아직은 여리디 여린 봄나물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이제 겨우 순을 틔워 봄 공기를 들이마시는 냉이부터 너무 어린 탓에 아직 제 풀빛조차 띄지 못한 쑥까지. 저녁 찬거리로 한 소쿠리를 캐는데는 30분이면 충분하다.
◇ 팔조령 옛 길
대구에서 가창을 지나 청도로 가려면 팔조령을 넘어야 한다. 지금이야 터널이 뚫려서 구비구비 고갯길을 넘을 필요가 없지만. 그래서 구불 구불 남아있는 옛 고갯길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주말이면 드라이브삼아 이 길을 달리는 사람들이 일부 있지만 대부분 터널을 통과해 청도로 넘어가기 때문에 도로변 어디에 차를 세워도 될 정도로 조용하다. 3월 초순을 넘어서면 양지바른 곳에 갖가지 봄나물들이 고개를 내민다. 도시락을 싸 가도 좋고, 고개 위에 자리잡은 휴게소에 들러도 좋다. 나물을 캐고 내친 김에 길을 달려 청도역 앞에 가면 유명한 추어탕을 맛볼 수도 있다. 고개 정상 부근에는 가벼운 산행을 할 수 있는 길도 있다. 도로 변에서 청도쪽을 내려다보는 풍경도 멋있지만 15분 정도 산길을 올라가면 이제는 잡초만 무성한 헬기장에서 주변 풍경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 신동재
대구에서 왜관으로 가는 국도도 새로 단장하면서 옛 도로를 지나는 차들이 크게 줄었다. 덕분에 호젓한 고갯길을 드라이브 삼아 달릴 수 있는 재미가 생겼다. 신동재는 다른 곳에 비해 그나마 차량 통행이 많은 곳. 고갯마루에 간이 휴게소들이 성업 중이다. 휴게소 옆에 자리잡은 수십여개의 장승을 구경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 5월이면 아카시아가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기도 하다. 아카시아 축제가 열릴 무렵이면 너무 복잡해진다. 신동재를 넘어서면 지천면이 나온다. 이 곳을 통과하면 옛 4번 국도를 만날 수 있다. 이 도로 역시 국도치고는 한적한 편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들판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4번 국도 주변도 추천할 만 하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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