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여행] 배고픔을 달래던 버들피리

세상 이치가 그렇듯, 봄은 모든 것을 들춰낸다. 겨울동안 숨겨진 것, 숨었던 것, 미처 내 보이지 못한 것들을 모두 드러나게 한다. 그래서 봄은 생기가 넘친다.

세상은 활기가 넘쳤지만 보릿고개로 먹을 게 부족했던 어린 시절 굶주린 배를 채워 준 것은 봄나물이었다. 엄마와 이모, 고모를 따라 뒷동산 양지 바른 곳으로 바구니를 들고 다녔다. 또래의 가시내들은 쑥, 냉이, 달래를 캐면 머스마들은 심심타 못해 말뚝박기, 곰배팔이를 하다가 배고픔에 지치면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이 버들피리는 뱃속에서 들려오던 "꼬르륵" 소리를 신기하게 없애주었다. 배가 고프면 더욱 힘차게 불렀던 버들피리.

버들피리의 소리를 타고 보릿고개 시절로 돌아가 보자.

봄날, 햇살이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깨춤 추며 깨금발 짓으로 마을 어귀로 뛰어갔다. 마침 손재주 좋기로 소문난 동모아재가 마을 개천 앞 버드나무 밑에서 칼로 뭔가를 열심히 깎고 있었다.

"동모아재, 뭐하는데?" "어, 버들피리 만든다." "버들피리? 그게 뭔데?" "야 이노마야 피리도 모리나, 버드나무로 만드는 버들피리!" 여덟 살 그 때, 버들피리를 처음 보았다.

동모아재는 헝겊으로 손잡이를 감싼 날카로운 칼로 새끼손가락만한 버드나무 가지를 베고 자르고 하더니 5분도 걸리지 않아 피리를 만들었다. 피리를 입에 물고 처음엔 입으로 오물거리며 자리를 잡더니 삘삘거리는 소리를 냈다. "우와"하면서 감탄을 더 지르려고 하는데, 곧 삘릴리하는 피리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신기한 나머지 펄쩍펄쩍 뛰면서 "나도, 나도"를 외쳤다. 동모아재가 웃으면서 건네주던 허옇게 묻은 버들피리를 소매로 쓱쓱 문지르고 입에 물었다. 근데 달콤할 것만 같던 버들피리가 왜 그리 쌉쌀하게 쓴지.

"퉤퉤" 거리면서 침을 뱉고 눈살을 찌푸리며 동모아재를 쳐다봤다. 동모아재는 재밌다는 듯이 웃어 젖혔다. "이노마야, 괜찮다. 버드나무는 원래 좀 쓰다. 피리 안 불고 싶나?" 하면서 피리를 뺏으려 들었다. 쓰든 말든, 뺏기기 전에 얼른 입에다 물고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떨림판을 힘껏 불어보았다. 그러나 쉭쉭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버들피리는 쉽게 불리지 않았다.

한 참 커서야 알았지만 버드나무의 맛이 쓴 건 버드나무 껍질에 있는 살리신이라는 성분 때문이었다. 히포크라테스가 버드나무 껍질이 해열작용을 한다는 걸 알았고 2,000년 뒤에 이탈리아의 화학자인 피리아가 버드나무껍질에서 살리신 산을 분리해서 몇 단계 공정을 거친 후 아스피린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스피린의 원료로 버드나무와 조팝나무가 쓰였다는 것을 그 땐 알 리가 없었다.

놀만한 친구들이 없어 애꿎은 돌멩이만 차던 날에도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버드나무에 물이 차오르지 않은 이른 봄이면 냇가에 핀 갯버들(버들강아지)이 좋은 재료였다.

옛 추억을 되살려 버들피리 만드는 솜씨를 부려보자. 피리는 나무의 굵기와 길이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소프라노에서부터 알토에 이르기 까지 많은 소리를 얻을 수 있다.

호드기 만들기와 같은 자연놀이체험을 하려면 김천 옛날솜씨마을(018-780-0150)이나 의성교촌농촌체험학교(http://cafe.daum.net/kc7755)를 찾으면 체험이 가능하다.

◆버들피리 이렇게 만들어보세요

준비물은 버드나무 가지, 가위, 칼이 필요하다.

① 가지의 가는 방향으로 껍질을 뽑아내야한다. ②두꺼운 쪽 마디 아래를 칼로 돌려 껍질과 속을 분리한다. 이때 칼의 깊이가 적당해야 껍질이 분리되면서도 가지가 남아있어 껍질을 뽑아낼 때 손잡이로 사용할 수 있다.

③ 가는 쪽 마디 위를 칼로 깊게 돌려 속가지까지 자른다. 깊게 칼집을 낸 가는 쪽 마디를 꺽어낸다 ④ 가는 쪽을 오른손으로 잡고 두꺼운 쪽을 비틀어 속가지와 분리한다. 탁하는 느낌이 들면 멈춘다. 더 돌리면 껍질이 갈라진다. ⑤가장 어려운 단계로 두꺼운 쪽의 남겨둔 마디를 잡고 껍질을 살살 돌려 껍질을 가는 쪽으로 뽑아낸다. ⑥분리된 껍질을 손톱으로 살짝 누른 상태에서 2~3mm 가량 칼로 껍질의 겉을 칼로 고르게 벗긴다. 역시 뒤집어서 반대쪽도 벗긴다. 겉 껍질 끝 2/3지점을 칼로 얇게 긁어낸다. 긁어낸 끝 부분을 가위로 말끔히 자른다. 끝은 납작하게 하고 반대쪽은 둥글게 완성한다. 마침내 입에 살짝 물고 바람세기를 조절하면서 신나게 분다.

김경호(아이눈체험교육원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