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봄날의 노래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며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 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유행가이면서도 한때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50년 이상 애창곡으로 불리는 노래, '봄날은 간다'. 불멸이라는 찬사가 어색하지 않은 이 노래는 한국전쟁 직후 대구에서 발표됐다.

손로원씨가 가사를 쓰고 박시춘씨가 작곡하고 백설희씨가 불렀다. 백설희에 이어 한영애가 칠순 촌로를 생각나게 하는, 인생의 가래가 섞인 듯 허스키한 목소리로 불렀다. 조용필, 심수봉, 장사익 등도 구슬픈 음색으로 노래했다.

이 노래는 단순히 한철 떠나는 봄을 아쉬워하는 푸념이 아니다. 붉게 물 드는 인생의 저녁놀 앞에서 지난날을 돌아보고 있다고 해야 적당하다. 옷고름 씹어가며 울던 세월에 대해, 피고 지는 꽃을 보고도 울던 청춘에 대해, 실없는 기약을 믿고 기다리던 날들에 대해, 이제 황혼과 마주 앉은 노인이 노래하는 것이다. 신작로는 진작 뚫렸지만 그 위로는 뜬구름만 흘러갔고, 파란 많았던 노인의 생은 저물고 있는 것이다.

'봄날은 간다'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삶을 담고 있다. 그러나 '청노새 짤랑대던 역마차 길'은 어색하다. 역마차는 미국의 서부시대에나 존재했던 것이니까.

'열 아홉 시절(순결)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지나고 보면 열 아홉 시절은 그립고 슬픈 시절이다. 말못할 사연이 있었거나 없었거나 간에, 나이 들어 돌아보는 열아홉 시절은 그립고 슬프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 노래에서 그리움의 대상은 특정인이 아니라 지나온 날들인 셈이다.

한국가요사의 잃어버린 번지와 세월을 찾고 정리한 영남대학교 이동순 교수는 그의 저서 '번지 없는 주막'에서 노래 '봄날은 간다'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1950년대 후반의 어느 꽃피는 봄날, 백설희의 노래를 유달리 좋아하던 누님은 이 노래를 부르다 기이어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먹였다. 나도 공연히 서러운 마음이 가득해져서 누님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훌쩍거렸다. 나는 그때 누님이 왜 울음을 터뜨렸는지 아직도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 '열아홉 순결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라는 노랫말 속에 흠뻑 빠져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봄날은 간다'를 부른 가수 백설희씨의 본명은 김희숙으로 1927년 출생했다. 조선 악극단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고, 부산 미도파레코드 시절 백영호 작곡의 '호숫가의 처녀'와 '꽃 파는 백설희' 등을 취입했고 이후 박시춘씨에게 개인지도를 받으며 '봄날은 간다' '딸 칠 형제'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등을 발표했다. '대전 블루스' '노란 샤쓰의 사나이' 역시 백설희씨가 부른 노래다.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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