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인 12세기에 편찬된 삼국사기 악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가야국의 가실왕이 이르기를 '제국의 방언(사투리)도 각각 다른데 성음(聲音)이 어찌 한결같으랴'". 이 말은 한 국가 안에서도 강 하나를 건너거나 산 하나를 넘어도 사투리가 서로 다르니 음악도 그럴 것임을 간파한 말이다.
하물며 방언이 아닌 언어가 다른 민족과 국가의 문화적 배경에 의해 생성된 음악이라면 오죽하랴.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중등학교의 음악시간에 '음악은 세계적 언어'라고 배웠다. 여기에 혹 서양음악 지상주의적 논리가 배어있는 것은 아닌지?
과연 이 지구상에는 서양음악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음악은 만국의 공통어'라고 말하는 그 이야기에 혹시 편협된 음악적 시각이 담겨있지 않은지 묻고 싶다. 정말 음악이 만국의 공통어라면 검둥이 누른둥이 흰둥이 등 전 세계 각 민족 각양각색의 모든 음악을 이해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종족음악학자들은 비서양음악을 서양음악적 눈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서양의 예술음악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그 예술음악을 낳게 한 문화적인 배경을 이해해야 하듯이, 비서양음악을 인식하는데도 그것을 낳게한 문화적인 조건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 예술음악에 대해 '문화조건의 이해' 운운 따위는 필요 없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이미 서양 문화조건에 젖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어로 비유하자면, 영어는 영어대로 독일어는 독일대로 묘미가 있고, 중국어나 한국어에도 그 나름대로 묘미가 있다.
비록 문법이 서로 다르다고 하나, 모두가 그것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가령 영어만 아는 사람의 귀에 한국어가 듣기에 이상하다고 '이상한 언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말하는 사람 쪽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한국 언어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음악은 언어와 같이 그것을 사용하는 집단 안에서 의사소통의 역할을 한다. 누구든지 한 음악언어에서 길들여지면 자기 음악언어들이 갖는 편견을 가지기 때문에 다른 것에 부정적이기 쉽고 다른 음악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이는 서양에서 유입된 일부 종교가 자기 교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아래 다른 교파를 이단시하는 배타적인 모습과도 비슷하다. 이제 음악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서양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음악적 취향을 더 넓히는 만큼 보다 더 풍요로운 문화적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인수(대구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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