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이 글을 쓰려다 문득 삼성그룹의 탄생지인 삼성상회 터가 보고 싶어졌다. 중구 인교동 오토바이골목 끄트머리에 있으니까 신문사에서 걸어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글로벌 기업 삼성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곳이다. 30평 남짓한 공간에 삼면이 주변 건물에 둘러싸여 마치 포위돼 있는 듯한 초라한 모습이다. 제대로 관리도 하지 않아 대리석 벽면에는 흙이 여기저기 묻어있고 바닥에는 과자봉지, 담배꽁초 등이 널려 있었다. 혹 삼성이 자신의 뿌리를 잊고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좀 씁쓸했다. 이를 보면서도 대구시가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를 위해 삼성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사실 대구시가 삼성에 의지하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대구와 삼성과의 인연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굳이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제일모직, 프로야구단 삼성, 삼성상용차 등에서 보듯 대구시가 실리적이고 심정적인 측면에서 믿고 기댈 대기업은 삼성 밖에 없다.
근데 문제는 대구시의 애끓는 심정과는 확연히 다른 삼성의 태도다. 2년전 대회 유치운동이 시작된 이후 대구시는 삼성을 끌어들이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조해녕 전 시장이 이건희 회장을 여러차례 만나려고 했고 김범일 시장도 마찬가지다. 요즘 구체화되고 있는 삼성상회 복원, 삼성기념관 건립 계획 등도 삼성 측에서 제기한 것이 아니라 시청 공무원의 책상머리에서 만들어졌다. 일종의 구애 프로젝트다.
삼성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대회 유치 지원에 관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며칠전 국제육상연맹 실사단의 대구 방문때 열린 환영연에도 유치위원으로 위촉돼 있는 삼성 관계자 2명은 불참했다. 바쁜 기업인이 만사 제쳐두고 참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지난달 평창에 동계올림픽 실사단이 왔을때 대외활동을 하지 않던 이건희 회장까지 적극적으로 나섰던 장면과는 다소 대조적이다.
결코 삼성을 탓하자는게 아니다. 기업이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행위를 놓고 뭐라고 할 수 없다. 지난 2003년 삼성이 대구시에 대구오페라하우스를 기부채납할 때도 그랬다. 오페라하우스 완공을 앞두고 시 공무원들은 삼성과 관련있는 이름을 붙이려고 했다. 그러나 삼성 측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공무원들 사이에 '초일류기업 삼성의 이름을 붙이기에는 좀 낯 뜨거운 건물.'이라는 뒷얘기가 많았다. 실제로 오페라하우스는 규모가 작고 부지도 좁다. 게다가 삼성이 문화사업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니라 구 제일모직 후적지 개발을 위해 대구시와 거래를 한 결과물이다.
어쨌든 일부에서는 삼성이 세계육상선수권 대회를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정부 입김 탓이라 믿고 있다. 요즘 안팎으로 수세에 몰려있는 삼성으로선 노무현 대통령에게 미운 털이 박힌 대구경북에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큰 의욕을 보이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여수 국제박람회에는 삼성이 공식 후원사로 나서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한다. 예전 '한국기업들의 성장은 정치권과 분리해서 논할 수 없다'고 한 고 이병철 회장이나 '우리나라 기업은 이류, 공무원은 삼류, 정치권은 사류'라는 이건희 회장의 말이 꼭 들어맞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대구시민만 불쌍하다.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잡고도 후원기업도 확정짓지 못하고 정부에게는 심한 냉대를 받고 있다. 힘이 없으면 자존심도 내세울 수 없다. 이를 악 물고 도시의 역량을 키우는 방법 밖에 없다.
박병선 기획탐사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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