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0일 휴전선 비무장지대 내 장단역.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을 가슴에 달고 56년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녹슬었던 증기기관차가 보존처리를 위해 임진각으로 옮겨졌다. 한국 분단의 상징물인 철마 수송현장은 국내외 많은 언론과 관광객들이 지켜봤다.
이 때, 기관차와 함께 주목을 받은 이들이 보존처리 실무를 맡은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이었다. 훅 불면 부스러질 것 같은 몰골의 고철 덩어리를 신제품과 다름없이 손질하고 보존처리하겠다며 자신하고 나선 것은 충분한 관심을 사고도 남았다.
이후 RIST 연구원들이 쇳덩이를 엿가락 갖고 놀 듯 하며 기관차를 마음대로 다듬으면서 '미다스의 손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별명이 붙게 됐다.
◆세계를 넉다운시킨 RIST의 신기술
포스텍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RIST(포항 지곡동)는 지난 20년을 통해 국내 철강실용화 기술의 산실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포스코가 세계 최고 철강사로 등극하기까지 중요 고비마다 핵심기술을 제공한 곳이 바로 RIST다.
최근 수년간 세계 철강업계에서 최대 관심거리로 부상한 포스코의 독자 철강제조 브랜드인 '파이넥스(FINEX)' 공법 개발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공법은 자연 상태의 가루 형태 철광석과 일반 유연탄을 그대로 원료로 사용해 쇳물을 생산하는 기술이다.
많은 투자비와 공해물질 과다배출이라는 기존 고로공법의 약점을 일시에 해결한다는 점에서 '꿈의 신기술'로 불리는 이 기술은 1992년 RIST 연구동에서 태동한 뒤 10여 년간 검증과정을 거친 성과물이다. 이들의 연구열정과 기술수준을 가늠케 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철강 신기술의 산실이 되라."며 RIST를 창립했던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파이넥스 기술 완성에 눈물까지 지었고, 이구택 회장은 2004년 세계 철강협회 컨퍼런스에 나가 "현존하는 최고 신기술"이라며 자랑하기도 했다.
이 뿐 아니다. 포스코는 지난해 8월 전남 순천에서 마그네슘 강판공장을 착공했다. 이 때도 세계가 놀랐다. 마그네슘 강판은 기존 철강강판에 비해 무게가 25% 정도여서 철판과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신개념 강판. 가격은 철판보다 8배나 비싸다.
RIST가 관련 연구에 은밀히 착수한 것은 2004년. 만 1년만인 같은 해 연말, 연구진들은 실험동에서 세계 최초로 연속 주조에서 압연까지 마그네슘 강판 제조 일관설비를 구축했고, 2006년 1월에는 세계 최대폭을 가진 강판을 가장 빠른 속도로 만드는 기술을 완성한 뒤 전격적으로 생산공장 건설에 나섰다.
설마 하며 안주하던 세계 업계는 "파이넥스에 멍들고 마그네슘 강판에 넉다운됐다."며 RIST를 경계 1호로 꼽기 시작했다.
내년 포항에 짓기로 한 발전용 연료전지공장 관련 기술 역시 이 연구소 '작품'이다. 이처럼 이곳에서 개발된 철강 신기술은 이루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중소기업 디딤돌에서 환경 파수꾼으로
RIST를 말할 때는 거의 빠짐없이 '국내 최대 민간연구소' '민간연구기관 최초 국제공인시험기관' '국내 유일'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이 곳에서만 행해지는 업무나 연구사업, 용역실적 등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한국교정시험인정기구가 실시한 능력평가에서 최우수 국제공인시험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정부가 지정한 국내 1개밖에 없는 용접연구센터도 이 곳에 있다. 다이옥신 측정 및 분석, 실내 공기질 측정, 폐플라스틱 고형연료제품 품질검사 등 정부도 하기 힘든 어려운 사업들이 RIST 연구동에 총망라돼 있는 것.
특히 외환위기 이후 벤처기업 육성을 주도한 창업보육센터의 1호 사업자가 RIST라는 점은 국내 중소기업들이 높이 평가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RIST는 앞으로는 환경 살리는 신기술에 주력할 계획이다.
1995년 여름 한반도 연안이 모두 붉게 물든 적이 있었다. 유독성 적조가 엄습하면서 폐사하는 물고기가 산더미같이 쌓였다. 피해가 가장 적다는 경북 동해안에서만 500억 원어치의 물고기가 떼죽음했고, 적조라는 말조차 모르고 살던 강원도 동해안까지 확산됐다. 이를 계기로 RIST는 바닷물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이듬해, 김광일 박사를 주축으로 한 연구진은 바닷물을 전기분해하는 방법으로 유해성 적조생물을 퇴치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점차 발전해 현재는 횟집 수족관의 유해성분 차단에까지 응용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조만간 적조를 완전히 해결하는 단계로의 발전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바닷물에 대한 연구는 나아가 제철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슬래그를 재활용해 해저복토용으로 사용하고 인공어초를 만들어 바다목장화를 달성하기도 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장을 거쳐 연구원 책임자로 옮겨온 류경렬 원장은 "철강 신기술과 환경 신기술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여 있는 것"이라고 향후 방침을 밝혔다.
이 같은 방향설정에 따라 대표적 공해산업인 철강업을 거점산업으로 하는 포항공단을 친환경 생태공단으로 변모시키겠다는 포항공단 생태산업단지 구축사업도 역시 RIST가 맡고 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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