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극인의 '진수성찬' 양은도시락 배달 10년 이광선 씨

"양은도시락에 담긴 따뜻한 밥 먹고 공연 잘 하세요."

지난 27일 오후 5시 대구시 중구 동성로에 위치한 제일극장. 두 시간 뒤 열리는 뮤지컬 '만화방 미숙이' 공연 준비로 분주한 이곳에 이광선(61) 씨가 도시락이 가득 담긴 가방을 들고 나타나자 '와' 하는 함성이 터졌다.

대구지역 연극계에서 이 씨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스타'다. 도시락 배달업체를 운영하는 이 씨가 지역 극단에 도시락을 배달한 지는 벌써 10년이 지났다. "이 씨의 도시락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대구 연극인이 아니다."라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 10년째 대구 연극계의 든든한 밥줄인 셈이다.

이 씨의 도시락이 연극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뭘까? 바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양은 도시락이 해답이다. 이 씨는 "1회용 도시락 용기는 운반하는 도중에 금방 식어버린다."면서 "하지만 양은도시락은 밥의 온기를 오랫동안 간직한다."고 말했다.

양은도시락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고 주문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다. 그는 "고객들이 1회용 그릇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도시락을 배달하는 동안 양은도시락을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양은도시락은 신문지로 꽁꽁 포장돼 배달하기 때문에 도시락 뚜껑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난다. 국도 직접 배식해준다. 이 씨의 도시락을 먹어본 연극인들은 "어머니가 싸 준 추억의 도시락이 생각난다."고 입을 모은다.

이 씨는 또 반찬을 미리 해놓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재료는 최대한 신선한 것을 이용하고 오후 5시에 배달 나갈 경우 오후 2시쯤 음식을 준비한다. 이 씨는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신선한 재료를 고집한다."고 말했다.

이 씨의 도시락이 인기있는 가장 큰 이유는 싼 가격. 1인분에 3천 원이다. 이 씨는 지갑이 얇은 연극인들에게 맛과 영양을 함께 배달해주는 셈이다.

그나마 이 가격도 지난해부터 인건비와 재료비의 압박으로 500원을 인상한 것이다. 이 씨는 "가슴 아팠지만 도저히 인건비 등 원가를 맞출 수가 없어 도시락 가격을 올렸다."면서 "3천 원 가격에 인건비와 재료비를 지불하기에는 여전히 힘들다."고 털어놨다.

이 씨는 지역에 큰 문화행사가 있을 때 신바람이 난다. 대규모 공연이 열리면 한꺼번에 100여개의 도시락을 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공연이 잘 열리지 않는 비수기다. 공연문화가 척박한 대구지역에도 대규모 문화행사가 많이 개최되는 것이 이 씨의 바람이다.

이 씨는 극단에 도시락을 배달하는 것 말고도 남모르는 후원활동도 펼친다. 이 씨는 "도시락 배달 일 때문에 바빠서 연극은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배우들의 연습모습을 지켜보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연습하는 배우들에게 음료수도 선물하고 공연이 끝나면 회식비도 보태준다. 도시락 비용도 극단의 재정을 위해 공연이 끝난 뒤에 결제한다.

"연극은 예나 지금이나 배고픈 직업입니다. 대구지역 연극계를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장사를 접을 때가지 따뜻하고 맛있는 도시락을 배달하겠습니다."

◈'만화방 미숙이' 출연진과 스태프들의 도시락예찬

"1년 365일 가운데 300일은 아저씨의 도시락을 먹습니다."

이날 메뉴는 오징어국과 고등어구이, 김치, 두부조림. 배우와 스태프 20여 명은 무대용 소품인 탁자와 의자를 놓고 20여 명이 둘러앉았다. 단원들은 가방과 박스 안에 든 양은도시락을 꺼내는 것을 도와줬다. 연극인들은 빠듯한 공연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도시락을 선호한다. 시내 음식점에서 먹을 경우 공연시간을 맞추기가 힘든 데다 식사비 부담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김현규(60)=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음식맛이 깔끔하다. 신선하고 싱싱한 재료를 쓰기 때문에 더 맛있다.

▶황병탁(46·음향팀) =학창시절 어머니가 싸 주셨던 도시락을 떠올리게 한다. 가격이 싸 부담이 없는 것도 매력이다.

▶이동수(40·기획실장)=연극인들 가운데 이 씨의 도시락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항상 배달시간을 정확하게 지키기 때문에 식사시간이 단축된다."

▶장윤형(38·여) =식당 음식보다 맛있고 싼 데다 예전 어머니가 직접 싸주신 밥맛이 생각난다. 공연하고 연습하면서 언제나 먹지만 질리지가 않는다.

▶김정인(19·여) =이 씨의 도시락은 신세대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동료들과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먹는 도시락은 꿀맛이다.

글·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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