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팔십년대, 구십년대, 이천년대/생각의나무 펴냄
'소설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뉴미디어 시대에 접어들면서 과거 소설의 향유층과 신세대들이 더 이상 소설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소설은 위기일까.
친절한 소설집이 나왔다.
독자를 위해 시대별로 문제작을 묶어낸 소설 선집이다. 젊은 비평가들의 모임인 민족문학연구소가 80년대와 90년대, 2000년대의 문제 작품과 평론을 함께 묶어 3권으로 냈다.
'소설 팔십년대'는 임철우의 '직선과 독가스'를 비롯해 방현석의 '내딛는 첫발은', 여성작가 김인숙의 '함께 걷는 길', 광주체험을 그린 정도상의 '십오방 이야기' 등이 수록돼 있다. 80년대는 뜨거운 열정의 시대다. 어느 작가의 농담처럼 이들은 당시 연애소설 한 편 쓰지 못했고, 제대로 된 출판기념회 한번 열어보지 못한 작가들이다.
'모두가 그 독가스 탓이죠...한번은 큰 병원에 찾아가 하소연을 했더니 기관지엔 이상이 없다며 차라리 정신신경과를 찾아가 상담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어요. 기가 막혀서.'(임철우 '직선과 독가스')
80년대 신군부의 강요된 표준모델을 거부하고, 아우사이드에서 사유와 글쓰기를 실천했던 이들이다.
90년대는 신경숙, 은희경, 공지영, 전경린 등 여성작가들의 활약이 눈부신 시대였다. 가족이나 결혼 같은 일상의 문제에 접근하며 그 풍경을 성찰했다. 신경숙의 '배드민턴 치는 여자', 전경린의 '바닷가 마지막 집', 은희경의 '그녀의 세 번째 남자', 공선옥의 '홀로 어멈' 등은 제도에 맞선 여성작가들의 예민한 감각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소설 구십년대'는 시스템 보다는 개인의 고독과 그로 인한 아픈 기억들을 우울하게 그려낸 작품들이 실렸다. 거대 담론보다는 독자들의 상처를 공유하고, 대면하는 작품들이다.
2000년대는 흥미로운 상상력이 소설에 다채롭게 묻어나는 시대다. 마치 영화 '데몰리션맨'처럼 디스토피아적 미래관을 그린 편혜영의 '맨홀', 시장통 밑바닥 인생을 그린 이명랑의 '까라마조프가의 딸들', 소시민들의 군상을 다룬 김윤영의 '얼굴 없는 사나이' 등은 전망 없는 청춘들이 쏘아올린 상상력의 폭죽 같은 작품들이다.
각권의 말미에는 시대를 읽는 평론을 곁들였다. 80년대는 '상처와 희망의 연대와 80년대 문학'(고영직), 90년대는 '역사와 일상의 내통'(고명철), '제도에 대항하는 예민한 감각들-90년대 여성서사'(서영인), 2000년대는 '여기, 상상력의 불꽃놀이가 시작되다'(오창은), '고독한 일상의 우울한 욕망들'(하상일) 등을 실었다.
10년의 시대를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선집의 장점이다. 독자에게는 친절한 소설집이지만, '소설의 위기'라는 우려로 보면 눈물겨운 노력이 아닐 수 없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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