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합법이면 모든 게 능사인가

안타깝지만 정초부터 혼란에 빠진 한 농촌마을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이런 일이 전국적인 현상이기에 지면을 빌립니다. 사태는 이렇습니다. 마치 폭격을 맞은 듯이 파헤쳐지는 마을산을 두고서 평화롭던 마을이 분란에 휩싸인 것입니다. 약 7천200평 크기의 땅에 공장 부지를 조성하기 위해서 마을산을 뭉개버렸기 때문입니다.

본래 이 마을산은 차가운 삭풍과 불길한 북서쪽 기운을 막아주는 裨補(비보)와 厭勝(염승)의 풍수기능으로 마을을 포근히 감싸는 그런 자연 구조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생활환경과 전통경관, 자연환경을 책임지고 있는 '생활 속의 마을산'이었던 것입니다.

그 덕택에 500여 년간 마을은 크게 부흥해왔습니다. 그래서 마을산 바로 옆에서 지하수를 마시고 사는 마을사람들이나 맑은 공기 마시겠다며 농촌 전원생활에 정착한 마을사람들은 '공장 지을 곳이 여기뿐이냐,'며 아연실색하고 있습니다.

군수님은 합법적이라고 못 박았지만, 민초들은 합법인지 불법인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모름지기 사람이 가슴으로부터 느껴지는 대로가 양심이고 바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군수님 말대로 합법적인지 아닌지도 한 번 따져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청장님, 어떻게 그렇게 엉터리 '사전환경성검토서'를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무슨무슨 협의'라는 것을 해준 것입니까? 이것도 한 번 따져 보겠습니다. 그런데 마을산은 결국 그렇게 해서 뭉개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마을산 뭉개진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약 70억 원짜리 국책사업의 기본방향을 정면으로 뭉개버렸다는 데에도 있습니다. 최근 이 마을은 더 이상의 농촌인구 감소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도시인이 찾고 싶고 정주하고 싶어하는 농촌마을 조성'이라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의 대상 농촌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올해부터 그 사업이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 터입니다. 이 국책사업의 기본계획서 속에는 이런 문장도 있습니다. '농촌지역을 전원생활 및 여가휴양, 그리고 자연환경 보전 공간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원적 기능을 확충'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전환경성검토서가 반드시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개발 입지의 타당성 평가 항목에서 이러한 국책사업을 고려했어야만 합니다. 그렇게만 했더라면, 마을산이 뭉개지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입니다.

한 손으로는 살고 싶은 마을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바탕으로 거액의 국비를 갖다 붓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마을사람들의 생활환경과 경관을 결정적으로 훼손하고 있는 모순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다 나열할 수도 없습니다만, 그 검토서 속에는 온갖 거짓말이 난무합니다. 그런 엉터리 사전환경성검토서를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한다면, 그것은 마치 돈세탁처럼 '행정 세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즘 마을 신작로에는 '기업유치와 지역발전을 방해하는 ○○○은 물러가라.'는 식으로 개발과 보존이 충돌하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이웃을 매도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마을산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도 기업유치와 지역발전을 간절히 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달랑 공장 세 개를 위하여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마을산을 뭉개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거나, 명분이 좋으면 불법이라도 상관없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군수님! 마을산 뭉개는 개발이 이미 허가가 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시거나, 거짓을 합법적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신다면, 70억 원짜리 국책사업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청장님! 거짓말투성이 검토서이지만 제재할 법이 없다고만 하시면 안 됩니다. 검토서가 난개발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더더욱 아니 될 것입니다.

군수님과 청장님! 여러분의 엄정한 행정집행이 이 나라의 밝은 미래의 첫걸음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도 조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제자들에게 절대로 '거짓'만은 가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겠습니다!

김종원(계명대 생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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