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서상돈님 동상에 미소를

국채보상공원에 봄비가 내렸다. 국채보상정신을 기려 세워진 서상돈'김광제님의 동상도 비에 젖었다.

100년 전 나랏빚 1천300만 원을 갚아 국권을 되찾자는 모금 운동을 주창했던 두 선각자들은, 동상을 세워 구국의 정신을 기려준 후세들을 내려다보며 어떤 감회에 젖으셨을까. 대견한 기쁨 속에 한편으로는 가슴속 깊이 소리 없는 오열을 삼키고 계실지 모르겠다. 민족정신은 드높였으되 모금성과에서는 실패로 끝난 보상운동과 다시 90년 뒤 IMF금모으기 운동 때의 두 번째 실패를 바라봐 오면서 '우리는 어찌 이리도 한마음이 되지를 못하는가'하는 회한을 느끼셨을 것 같아서다.

2천만 백성이 3개월간 담배를 끊어 매달 20錢(전)씩 3개월만 모으면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호소한 보상운동은 1년 동안 18만 8천여 원밖에 모으지 못했고(일본 헌병대 기밀 제 407호 보고서) 이후에도 230만 원 안팎밖에 더 거둬지지 않았다. 목표액의 16% 선이었다. 일제의 모금 탄압 탓이지만 당시 대한매일신보는 '백정도 의연금을 내는데 부호 안모 씨는 모금운동을 냉소하며 한푼도 의연치 아니하니 타매(침을 뱉다)치 않을 수 없다'는 기사로 부유층의 무관심을 비판했다.

'정부 대신들은 의연금을 다투어 내는 가난한 노동자 보기를 어쩔 것인가'는 비판기사도 나왔다. 한마음이 되지 못했던 자성의 목소리였다.

IMF 금모으기 운동 때도 모금성과는 국채보상운동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당시 세계인의 이목 속에 거둬낸 금은 225t, 21억 7천만 달러였다. 그러나 목표치 250억 달러에는 10%에도 못 미친 성과였다. 그리고 수십조 원의 공적자금을 쏟아 애매한 탈출을 했을 뿐이다. 100년 동안에 일어난 두 번의 국난극복이 두번 다 아래 위 한마음을 이뤄내지 못한 채 10~16% 모금 선에서 끝났었던 사실에서 님들의 가슴에 '어찌 우리는…'이란 통한이 서리시지나 않을까 송구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국채보상운동 관련시민단체의 값진 노고로 동상이 세워지고 보상운동 기념행사가 열렸던 지난달, 전국의 적십자사는 2007년도 적십자 회비를 모금 중에 있었다. 국채보상모금과 금모으기 운동이 국난위기 때의 비상 국민모금운동이었다면 적십자회비 모금은 반세기 가까이 지속적으로 벌여온 범국민 성금운동인 셈이다. 모금기간만 다를 뿐 애국애족하자는 국민운동이란 정신적 면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다. 오늘 현재 전국 적십자사의 회비모금액은 270여 억 원. 목표액 421억여 원의 64%선이다. 告知(고지)건수에 대한 회수율(40%) 목표로 기준하면 25% 미만 선이다. 75%는 미납이란 얘기다. 이 회비 역시 국채보상운동 때처럼 잘사는 서울부자보다는 지방의 보통시민들 쪽에서 납부율이 높다. 3월 통계만 봐도 서울'부산 등 대도시보다 강원도'충청도'제주도 같은 지방 지사의 모금 실적 비율이 10~20%나 더 높다. 우도 같은 섬 주민은 150%를 넘겼다.

우리(대구 적십자 지사) 경우 지난한 해 21억 5천만 원을 거뒀다. 그 돈으로 극빈자 무료급식 2만 6천 명, 홀몸노인 어버이결연맺기 276명, 팔공산'비슬산 등에 비상구급함과 구조봉사대 운용, 장학금지급 등등 박수쳐줄 만한 봉사활동을 펼쳤다.

혜택도 준다. 6천 원 회비만 내도 적십자병원 종합검진비와 장례식장 비용의 20%를 할인받을 수 있다. 10배가 남는 혜택이다.

이제 다시 담배 끊고 금 모아야 할 위기의 국난은 오지 않아야 하겠지만 국채보상운동 발상지의 긍지로 올해부터는 적십자회비 완납도시의 자부심을 일궈보자. 일년 중 노래방 한 번만 참으면 3년 연속 100%완납시민의 영예를 얻을 수 있다.

'가자 아픔이 있는 곳에'란 적십자 구호와 함께 국채보상운동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서상돈님의 동상에 미소를 띄워드려 보자.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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