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재클린의 편지

존 F 케네디는 여러모로 미국인들의 가슴에 전설적인 대통령으로 남아있다. 그때까지의 미 대통령 중 가장 젊은 대통령에 최초의 가톨릭 신자 대통령, 탁월한 카리스마와 정치력, 게다가 호남형 외모까지 갖춰 미국인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최근 미국 갤럽의 여론조사에서도 케네디는 에이브러햄 링컨, 로널드 레이건에 이어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3위에 꼽혔다.

◇그러나 케네디는 못말릴 바람둥이기도 했다. 아내 재클린 몰래 숱한 여성들과 상상을 초월하는 밀회를 즐겼다. 20세기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와의 스캔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1962년 케네디의 45회 생일 축하 파티에서 먼로가 특유의 저음으로 불렀던 축하 노래 'Happy Birthday To You'는 지금도 가끔씩 라디오 전파를 타고 있다.

◇끝없는 남편의 바람기에 재클린이 얼마나 힘들어 했을지는 불문가지다. 재클린은 남편의 불륜사실을 모른 척했다 한다. 일화에 따르면 한 번은 침대에서 낯선 팬티를 발견한 그녀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이건 내 사이즈하고 다른 것 같아요. 혹시 누구건지 알아봐 주실래요?"

◇재클린이 자신처럼 남편의 바람기로 고민하던 막내 동서 조앤 베넷 케네디 여사에게 "참지 말고 맞바람을 피우라"고 충고한 편지 내용이 화제다. 4일 영국 일간 데일리 텔레그래프 보도에 따르면 시동생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부인 조앤에게 보낸 이 편지는 1963년 케네디 암살 이후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 내용이 꽤 충격적이다. "노예와 바보를 뺀 어떤 여성이 남편이 바람을 피운 후에도 참으면서 여전히 사랑스러운 아내로 머물러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이는 너무나 구식"이라고 썼다.

◇동서에게 남자친구 연락처를 적은 수첩을 만들라거나 밤마다 유부남에게 전화를 걸어 밖에서 만나라고 권하기도 했다. 同病相憐(동병상련)의 감정이 물씬 묻어난다. 재클린 자신의 뼛골에 사무친 한(?)이 투영돼 있기도 하다. 그녀의 '맞바람' 처방에도 불구, 조앤은 1982년 남편의 不貞(부정)을 이유로 이혼했다. 세기의 퍼스트 레이디 재클린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13년전 세상을 떠났다. 남편의 바람기를 못내 힘겨워했던 조앤도 이제 71세의 노인이 됐다. 새삼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는 재클린의 편지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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