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일현의 교육 프리즘] 공부와 놀이

J. 호이징가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 Homo Ludens'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금보다 더 행복한 시절에 우리는 우리 종족(species)을 '생각하는 인간, (Homo Sapiens, Man the Thinker)'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성을 숭배하고 낙관주의를 고지식하게 좇았던 18세기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렇게 이성적이라고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대에 와서 인간을 '만드는 인간, (Homo Faber, Man the Maker)'으로 지칭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faber가 sapiens보다는 덜 모호한 의미이지만 다른 많은 동물들도 만드는 존재라는 점을 감안하면 faber가 인간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보기에는 오히려 부적당한 느낌이 든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나 동물에게 다 같이 적용할 수 있으면서도, 생각하는 것이나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놀이하는' 기능이다. '만드는 인간'과 이웃하면서 '생각하는 인간'과는 같은 차원에 속하는 술어로 취급해야 할 것이 '놀이하는 인간, (Homo Ludens, Man the Player)'이라고 했다.

이 책에서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모든 형태의 문화는 그 기원에서 놀이의 요소가 발견되며, 인간의 공동생활 자체가 놀이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냥은 물론 전쟁조차도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문명은 놀이 속에서 놀이로서 생겨나 놀이를 떠나는 법이 없다고 말하며, 인간은 놀이를 통하여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표현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문화가 놀이 성격을 벗고 있다고 개탄했다.

호이징가가 던지고 있는 질문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자. 놀이하는 재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왜 어린이는 기어 다니면서 즐거워하는가? 왜 노름꾼은 자신을 잊도록 도취하는가? 왜 축구시합에 그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가? 그는 놀이에 열광하고 몰두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분석으로는 해석할 수가 없고, 놀이에 이렇게 열광하거나 몰두하는 것, 즉 미치게 만드는 힘 속에 놀이의 본질, 원초적인 성질이 들어 있다고 했다. 자연은 긴장과 쾌락과 재미가 함께 하는 놀이를 우리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학교와 가정에서 "놀지 말고 공부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호이징가의 글을 읽으면 논다는 것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논다는 것을 결코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 일과 놀이가 과거처럼 자연스럽게 결합되지 못하는 것이 현대의 불행일 따름이다. 오늘의 인간이 일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무작정 놀 수만은 없다. 어떻게 둘을 조화시킬 것이냐가 문제이다. 공부할 때는 폭발적인 집중력을 발휘해서 모든 힘을 공부에 쏟아 붓고 그런 다음에는 휴식을 취하며, 적절하게 놀 줄 알아야 한다. 잘 노는 아이가 공부도 잘 한다.

윤일현(교육평론가, 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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