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정신없이, 신나게 모았지. 이젠 더 이상 놓을 곳이 없을 정도야. '너무 많이 모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
5일 대구 수성구 파동 김정원(81) 할아버지의 고서점. 고서적과 그림, 화폐, 사진, 도자기, 축음기 등 1만여 점의 옛날 자료, 소품들이 1층에서 3층까지 서점 곳곳에 빼곡히 쌓여 있었다. 지난 46년간 '책이 좋아' '글이 좋아' '옛 것이 좋아' 전국을 누비며 수집한 자료. 세월의 때가 겹겹이 묻어 누런 속살을 내보이는 이들 자료를 슬쩍 훑어보는 데만 수일이 걸릴 정도다.
김 할아버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자료 중 하나는 바로 '회음 후 열전'. 1445년 주조된 금속활자 갑인자로 찍힌 이 소설책은 이미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의 고증을 받기도 했다. 200년 전 암행어사가 자신의 마패로 탄원서에 결재를 한 고문서도 눈에 띄었다. 신분을 드러낼 때 사용했던 마패가 도장의 기능도 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인 것.
이뿐이 아니었다. 유길준 선생의 '서유견문'과 '시일야 방성대곡'을 쓴 장지연 선생의 자필 원고도 있었다. 더욱이 장지연 선생의 경우 당시 지리교과서도 제작,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을 알리기도 했다. 김 할아버지는 이 같은 사실을 찾아내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을 입증한 사료로도 사용했다.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김 할아버지는 현대 문학가들의 글도 적잖게 모았다. 신석정, 김춘수, 조병화, 김광섭, 김현승 등 한국 현대 문학의 대가들이 쓴 친필 원고도 소장하고 있는 것. 그는 "우연히 모은 자료 중에 선생들의 친필 원고가 들어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이 외에도 250년 전쯤 치러졌던 과거시험의 문제지에서부터 주시경 선생의 '조선어문법' 등 각종 역사서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김 할아버지는 "고서적들이 워낙 많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계속 팔라고 하는데 평생을 바쳐 모은 이 소중한 것들을 어떻게 값으로 매기겠느냐."며 ""죽을 때까지 찾아오는 이들에게나마 산 역사를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삶에 더이상 욕심도, 후회도 없다는 김 할아버지의 마지막 남은 고민은 이들 고서적의 처리 문제. "역사를 배우고 익히는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 자료가 되길 바라는데 딱히 이 자료들을 맡길 곳도, 둘 곳도 없네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데, 제발 쓰레기 소각장으로 가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정현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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