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갈수록 강폭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마르상디 강을 따라 걷는다. 쏘롱 페디 베이스 캠프 롯지(Thoroung Phei Base Camp 4,450m)로 가는 길이다.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한 곳이었지만 고소 증세로 발걸음이 드뎌져 해가 중천에 닿았는데도 갈 길은 여전히 멀다. 가이드 유진은 걱정이 되는지 여행자의 뒤에 서서 걸음을 재촉하다가 오르막 길 옆에 있는 찻집에서 쉬어가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찻집은 문이 닫혀 있다. 오랫동안 비워둔 탓인지 자물쇠가 걸린 나무문에 낙서가 가득하다. 가이드와 포터가 낄낄거리며 웃는 것을 보니 한눈에도 음란한 낙서임에 분명하다. 순수한 히말라야 백색 설봉이 선 이곳에 배설의 욕망이 낳은 증거는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지만 문득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공중화장실의 벽은 온갖 낙서가 가득했다. 그것은 투명하지 못한 사회를 향해 내뱉고 있는 은밀한 증거이고 이곳 안나푸르나 곳곳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마낭으로 오는 한적한 마을에서 젊은이들은 도박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마을에서는 고리대금업을 하는 중년의 사내가 노인의 마지막 재산인 달걀을 빼앗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 없고 그것을 안타까워해야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찻집 지붕 위에 나부끼고 있는 낡은 룽다의 그림자처럼 여행자의 마음이 쓸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도착한 쏘롱 패디 베이스 캠프 롯지는 원시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계곡의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계곡은 히말라야의 모태가 바다였다는 것을 증언이라도 하듯이 물결모양의 검은 단층을 알몸으로 드러내고 있다.
짬바(기장을 빻아 만든 가루)를 넣어 만든 죽을 점심으로 시키고 신발을 벗으니 발등에 물집이 잡혀 있다. 물집을 본 가이드 유진이 약초를 말려 만든 가루를 얻어와 발라 준다. 쓰라림이 한결 가셨지만 하이캠프(High Camp 4,800m)를 오를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길은 멀고 또한 돌아가기에는 이미 내지른 선택이 너무 무겁다.
한 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는 하이캠프로 가는 길은 급한 비탈길이다. 이곳에서 숙박을 하지 않는 것은 해발 5,416m의 쏘롱 고개 때문이다. 이곳에서 출발해서 고개를 넘으려면 새벽4시가 되기 전에 출발해야 하고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뎌 아득한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염려가 있다. 더구나 하이캠프에서 쏘롱고개를 넘기까지는 아무런 숙박 장소도 찻집도 없기 때문에 서둘러 하이캠프로 오르는 것이다.
가파른 언덕을 십여 분 쯤 올랐을까? 굽이도는 길 한편에 선한 눈을 가진 개 한 마리가 언덕을 내려다보며 앉아 있다. 담배를 빼어 문 포터 쪼루가 롯지에서 산 비스킷 하나를 던져주었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머리를 쓰다듬자 그저 꼬리를 한번 흔들 뿐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행여 그의 자리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서둘러 길을 나서자 개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길을 안내 하듯이 천천히 앞서서 걷는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해석하려 든다면 오히려 그 본질은 빛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로지 영원한 것은 저 생명의 나무이다."라는 괴테의 말은 한때 사람에 대한 예의에 앞서 섣부른 이론에 미혹되었던 여행자에게는 늘 삶의 경구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 는 부처의 말씀이 더 쉽고 깊게 와 닿는다. 이 가파르고 힘든 길, 벗이 되어주는 저 개가 윤회(輪回)의 사슬을 끊고 샹그리라에 닿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비록 부질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믿고 싶다.
아!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저 이 히말라야를 떠도는 여행자들의 허기진 아름다움을 채워 줄 이름 모를 들꽃일수는 있을까? 아니 그들이 잠시 쉬어갈 자리를 만드는 바위일 수는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농부의 수고로운 땀을 말리거나 룽다를 흔들어 부처의 말을 전하는 바람일 수는 있을까? 하이캠프로 오르는 길 내내 이렇듯 생각은 깊고 마음은 여여하다.
먼저 올라간 포터 쪼루가 여행자의 배낭을 가지러 다시 내려온다. 하이캠프가 아스라이 모습을 보인 비탈 아래까지 피곤함을 무릅쓰고 다시 내려온 쪼루는 고맙다는 인사에 빙그레 웃는다.
겨우 도착해서 잠시 쉬었을까?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자욱한 안개가 하이캠프를 뒤덮는다. 물기를 가득 먹은 안개에 새들이 처마 밑에 웅크려 우는 것은 돌아갈 곳이 어딘지를 헤매는 여행자의 모습이다. 젖은 깃털이 마르면 비상을 꿈꾸는 새의 자유와 가슴을 긋는 휑한 바람에 떠나는 역마살이 비교될 수 없겠지만 고독과 외로움은 같다.
삼면에 넓은 유리창을 가진 롯지의 식당에서 안나푸르나를 넘어야 할 또 다른 이유를 가진 사람을 생각한다. 안나푸르나로 떠나기 이틀 전, 십여 년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나면서 어쩌면 여행자에게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사람들은 제가 혼자이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녀가 메일에 쓴 그 말에는 속내를 들킨 부끄러움이 있었다. 그녀가 두 아이의 엄마이지 않다면, 아니 그녀가 혼자이지 않다면 그리움을 꿈꾸기나 했을까? 행여 이 그리움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나 동정심은 아닐까? 마흔을 훌쩍 넘기고서도 혼자 살고 있는 남자의 외로움이 그리움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 힘들다. 어쩌면 내일 쏘롱 고개를 넘을 때까지도 아니 안나푸르나를 다 돌아 나올 때까지도 답을 얻지 못할지 모른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온 밤에/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무수한 어깨들 사이에서/무수한 눈길의 번득임 사이에서/더욱 더 가슴 저미는 고독을 안고/시간의 변두리로 밀려나면/비로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수많은 사람 사이를 지나고/수많은 사람을 사랑해 버린 다음/비로소 만나야 할 사람/비로소 사랑해야 할 사람/이 긴 기다림은 무엇인가/바람 같은 목마름을 안고/모든 사람과 헤어진 다음/모든 사랑이 끝난 다음/비로소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여/이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여
문병란 시인의 "호수"를 안고 잠자리에 드는 밤, 칠흙 같은 어둠이 안개비에 젖어 있다.
전태흥 ㈜미래데이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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