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난 달 26일 헐리우드 코닥극장에서 열렸다. 레드카펫을 밟고 단상에 오른 영광의 얼굴들에게 전 세계의 시선이 모아졌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각광을 받은 인물이 있었다. 바로 미국의 제43대 대통령이 될 뻔했던 앨 고어.
고어는 정치인이 아니라 환경운동가로서 황금색의 오스카 트로피를 받으러 두 번이나 단상에 올랐다. 그가 출연한 환경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이 장편 다큐멘터리상과 주제가상 등 2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기 때문이다.
그는 시상식에서 "지구 온난화와 환경 문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문제이며 미국 시민들이 함께 풀어가야 한다"고 역설,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미국 민주주의 제도의 허점을 만천하에 드러낸 2000년 미 대통령선거에서 앨 고어는 득표에서는 이겼으나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대통령 자리를 조지 W 부시에게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후 정치인이 아닌 환경운동가로 변신, 행동하는 지도자로서의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스타로 떠올랐다.
100만 달러를 들여 제작한 '불편한 진실'. 지난해 초 미국에서 개봉돼 2천4백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웬만한 극영화를 능가하는 흥행기록.
'불편한 진실'은 앨 고어의 고향 테네시에 있는 캐니포그 강의 아름다운 강변 풍경에서 시작된다. 갖가지 인상적인 그래프와 사진, 그리고 앨 고어의 재치 있는 입담을 곁들인 과학적인 설명으로 구성된 영화. 지구온난화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경고하고 있다.
다 녹아 사라질 위기에 처한 '킬리만자로의 눈'과 극지방 빙하가 무너지는 장면뿐만 아니라, 한 때 세계 여섯 번째로 큰 호수였다가 이제는 바닥을 드러낸 아프리카의 차드호, 북극에서 가장 큰 워드 헌트 빙붕(氷棚)의 균열, 남극 펭귄의 개체 수 감소 등 환경재앙의 조짐을 갖가지 사진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산화탄소의 배출로 지구 온난화가 이대로 계속되면 북극의 빙하는 10년을 주기로 9%씩 녹아 사라지며, 그 결과 전 세계 해수면은 6m 가량 상승한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태평양의 섬들이 하나둘씩 잠기고 플로리다, 샌프란시스코, 베이징, 상하이, 인도의 콜카타, 방글라데시, 뉴욕 등 대도시의 40% 이상이 침수되며 네덜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2005년 8월 뉴올리안즈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도 지구온난화 탓이라고 주장한다.
이 영화는 호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하고 오로지 편리함만을 추구하고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인류에게 경종을 울려 주고 있다.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고 지구 환경을 보전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위험으로 치닫고 있는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기 위해 우리 모두가 나서야할 때임을 일깨워주고 있다.
앨 고어가 경고하는 기후 변화의 조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한반도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전국 평균기온은 2.46℃로 평년보다 2℃ 이상 높았다. 1908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지난 100년 동안 가장 포근한 겨울로 기록되었다.
이상 난동으로 한강은 15년 만에 처음으로 얼음이 얼지 않았다. 남녘에서 전해오는 봄꽃 소식이 거의 20일 가량 앞당겨졌다.
동해안 표층 수온은 지난 36년 동안 수온이 약 0.82℃ 상승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동해안에 예전에는 볼 수 없던 아열대성 어종들이 빈번하게 출현하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지구온난화가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숱한 학자들이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줄기차게 경고해 왔지만, 일반인들 중의 53%는 여전히 온난화의 영향을 인정하려들지 않고 있으며, 정치가와 행정가들마저도 환경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가 환경 재앙을 피하고 아름다운 지구를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앨 고어가 전하는 경고의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한다. 그리고 크고 작은 불편을 기꺼이 참고 이겨내야한다.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화언 대구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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