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면죄부

8일은 유엔이 정한 제99돌 '세계 여성의 날'이다. 1857년 3월 8일, 미국 뉴욕의 섬유'의류업계 여직공들이 작업 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여 그 과정에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1908년 3월 8일, 또다시 수천 명의 미국 봉제산업 여성 종사자들이 미성년자 노동금지와 여성참정권 등의 요구조건을 내세워 시위를 벌였다. 여성 노동운동에 한 획을 그은 이 두 사건이 모두 3월 8일에 일어났던 것을 기려 세계 여성의 날이 제정됐다.

◇세상은 桑田碧海(상전벽해)로 바뀌었다. 지구촌에 女風(여풍)이 드세다. 세계 최고 명문대 하버드대학에 개교 371년 만에 첫 여성 총장이 탄생, 화제가 됐다. 아이비 리그 8개 대학 중 4개 대학을 여성 총장이 이끈다. 여성 대통령'여성 총리도 증가추세다. 힐러리 클린턴은 2008년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등극을 겨냥하며, 세골렌 루아얄도 올봄 대선에서 프랑스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여풍도 만만찮다. 교육계는 말할 것도 없고, 사시, 행시, 외시 등 주요 8개 국시에서도 여성 합격률은 매년 기록 경신 중이다. 특히 법조계의 여성 파워는 놀랍다. 올해도 신임 97명 중 여성판사가 47명(48%), 신임 예비판사 90명 중 여성이 57명(63%)이나 된다. 한자릿수에 그치던 여성 국회의원도 17대 총선에서는 헌정 사상 최초로 13%로 뛰어 올랐다.

◇21세기를 두고 '여성의 세기'라고 했던가.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멀어 보인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은 폭력과 빈곤의 위협에 놓여 있다. 유엔은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올해 주제를 '면죄부를 없애자'로 정했다. 나라마다 性(성)범죄 처벌 규정이 있지만 성매매,인신매매, 할례, 성폭행 등 여성 상대 폭력은 여전하며, 성범죄자 상당수가 처벌을 받지 않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다.

◇공교롭게도 우리로선 한층 낯부끄럽게 됐다. 6일 미국 국무부 연례보고서가 한국을 '성매매 천국'으로 지적했다. 북한은 '무자비한 학정 공화국'으로 지적됐다. 남북한 모두 겹창피를 당하게 된 셈이다. 범죄자에겐 마땅히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정의와 공의가 살아있는 사회다. 이 사회를 곪게 하는 '면죄부'에 우리 모두 책임을 통감해야 겠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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